49년생 투수 무라타 쵸지가 지난 20일 한일 레전드 매치 5회에 등판, 특유의 피칭폼으로 역투하고 있다. 잠실=조병관기자 rainmaker@sportschosun.com |
경외감 그 자체였다.
올스타브레이크 동안 의미있는 이벤트가 두차례 열렸다. 21일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열렸고, 하루전인 20일엔 한일 레전드 매치가 있었다. 두 행사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레전드 매치의 5회말 상황을 거론하고 싶다.
49년생 투수. 우리 나이로 64세인 일본 레전드 팀의 무라타 쵸지가 보여준 피칭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투혼이었다. 무라타는 이날 일본이 0-2로 뒤진 5회에 마운드에 올랐다. 시속 130㎞ 가까운 구속을 선보였고, 현역 시절 유명했던 '도끼로 찍는 듯한' 투구폼으로 1이닝을 책임졌다. 총 38개를 던졌고 실책 등이 겹치며 2실점했지만 의욕이 돋보였다. 일본 벤치에서 대선배를 쉬게 하기 위해 투수교체를 하려했지만, 무라타가 손을 내저으며 거부하는 모습도 보였다.
환갑 넘은 나이에 그처럼 역동적인 투구폼으로 공을 던졌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지난 2008년 은퇴선수 리그에서 시속 141㎞를 던졌다는 얘기가 있긴 했다. 그런데 지금 현 시점에서 한국 야구팬들의 눈 앞에서 단순히 '노익장'이 아닌, 오랜 노력의 결과물이 어떤 것인지를 증명했다는 게 중요하다. 게다가 클리닝타임때 실시된 '스피드킹' 이벤트에까지 참가, 시속 124㎞를 기록했다. 시종일관 여유가 있었고, 생각보다 스피드가 나오지 않자 땅을 내리치며 좌절하는 듯한 모습으로 유머 감각도 내비쳤다. 실점과 성적을 떠나, 무엇보다도 무라타는 지금 현재 마운드에서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이날 삼성 김한수 코치도 한화 한대화 감독과 함께 3루수 레전드로 출전했다. 김 코치는 "그 분이 경기에서 던진 것도 던진 것이지만 우리는 준비하는 과정에서 더 놀랐다. 그 연세 많으신 분이 1이닝을 던지기 위해서 경기전에 덕아웃 근처에서 롱팩을 하는 걸 봤다. 우리쪽에서 '우와~, 저 선수 봐라' 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물론 실전에 들어가니 공이 그렇게 위력적이진 않았지만,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열정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보통 투수들은 캐치볼을 하면서 점점 거리를 넓히다가 마지막에 롱팩으로 마친다. 롱팩이라고 하면 보통 70m 이상의 거리를 의미한다. 김한수 코치는 "선수 시절부터 그런 투구폼으로 던진 걸로 알고 있다. 투구판을 밟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일단 45도 각도로 밟았다가 약간 점프하듯이 뛰어오르다 내려오면서 발을 90도로 만들어 던지더라. (무라타에게 삼진을 기록한) 유지현도 놀라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이날 김 코치도 '스피드킹' 이벤트에 참가했다. 김 코치는 "공 3개 던지고 나니 팔꿈치쪽 인대가 5㎝ 정도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투수들이 인대를 다칠 때 어떤 기분인지 느꼈다"고 말했다. 그래서 무라타의 피칭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무라타는 일본프로야구에서 22시즌 동안 604경기에서 3331⅓이닝을 던져 215승 177패 33세이브를 쌓아올린 레전드 투수다. 국적을 떠나 레전드 매치의 가치란 게 어떤 것인지 보여줬다. "야구를 향한 나의 열정은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는다"고 했던 톰 글래빈의 명언을, 무라타 쵸지의 역투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승부를 떠나 우리 프로야구의 현역 감독들이 직접 플레이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감독들은, 그동안 표현은 안 했지만 레전드 매치를 앞두고 꽤 신경써왔음을 플레이를 통해 내보였다. 기요하라, 사사키 등 최근 20년간 국내 야구팬들에게 익숙해진 일본 레전드 스타들의 플레이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경기력 자체는 사회인야구 1부리그 보다도 떨어졌을 지 모른다. 하지만 잔잔한 감동이 있어 즐거운 레전드 매치였다. 향후 2년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열릴 계획이라고 하니 꾸준한 이벤트가 되기를 바란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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