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스페인이 2일 열린 유로 2012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4-0으로 완파하는 것을 보고 새삼 독일의 탈락이 아쉽게 느껴졌다. 포르투갈과 이탈리아는 못했지만 독일은 ‘타도 스페인’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4강에서 이탈리아에 무너졌지만 독일은 스페인을 잡을 잠재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탈리아와의 C조 예선 1차전에서 1-1로 비긴 뒤 스페인이 이탈리아를 잡으려면 스루패스를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었다. 미드필드부터 수비라인까지 강하게 압박을 펼치는 팀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공간 침투와 스루패스가 필요하다. 이는 공간을 파고드는 선수의 움직임과 패스를 찔러주는 선수의 타이밍이 절묘하게 조화돼야 한다. 비센테 델보스케 스페인 감독은 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이날 스페인의 승리는 스루패스의 승리였다.
전반 14분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페널티 지역으로 달려들자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는 아크서클에서 골지역 오른쪽으로 직선 패스를 찔렀다. 파브레가스는 볼을 잡아 엔드라인 근처에서 크로스를 띄웠고 달려들던 다비드 실바가 머리로 받아 넣었다. 이탈리아 수비라인은 힘조차 쓰지 못했다. 전반 41분 호르디 알바는 미드필드 왼쪽에서 사비 에르난데스에게 패스한 뒤 페널티지역 왼쪽으로 달려들었다. 사비는 수비수 사이로 파고드는 알바에게 패스를 넣었고 알바는 볼을 그대로 차 골네트를 갈랐다. 후반에 터진 페르난도 토레스와 후안 마타의 추가골도 스루패스의 결과물이었다.
스페인의 우승으로 향후 세계 축구는 스페인 vs ‘타도 스페인’ 구도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나 스페인을 무너뜨릴 팀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처참하게 몰락한 네덜란드를 포함해 독일과 포르투갈,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남미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월드컵 우승권에 근접한 팀들은 모두 스페인을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다.
‘타도 스페인’의 요점은 두 가지다. 볼을 뺏겼을 때 바로 압박하는 플레이와 미드필드와 수비라인에 걸쳐 짧게 이어지는 점유율 축구를 어떻게 깨느냐다. 3개 메이저 대회에서 효과를 얻은 스페인은 점유율 축구를 더욱 강화할 것이고 이를 무너뜨리기 위한 각국 팀들의 노력이 이어질 것이다. 2년 뒤 열릴 브라질 월드컵은 새로운 축구의 트렌드를 확인할 최고의 대회가 될 것이다.
세계 축구는 이렇게 날로 흥미로워지는데 한국 축구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행정을 하고 있어 아쉽다. 이날 우크라이나 키예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최강희 축구대표팀 감독을 만났다. 그런데 명색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이 초라하게 일반석에서 최덕주 수석코치와 함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이번 대회의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물론이고 유럽축구연맹(UEFA)과 유대 관계에 있는 대한축구협회가 조금만 노력했다면 최 감독은 귀빈석에서 세계적인 축구 거물들과 대화를 하며 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
‘유로를 보러 가는데 티켓 좀 알아봐 주면 안 되냐’고 질문할 때마다 “UEFA 주관이라 우린 힘이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축구협회의 행정은 축구인들의 힘을 뺀다. 세계 유수의 지도자들은 현장에서 유로를 보며 세계 축구의 흐름을 공부하고 있었다. 자비를 털어 현지에서 어렵게 티켓을 구해 경기를 지켜보는 우리 지도자도 많다. 축구협회는 이 지도자들을 어떻게 도와줄지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키예프에서(끝)
허정무 전 축구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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