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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이만수 감독 |
지난 시즌의 일이다. 한 선수가 홈런 세리머니 때문에 다른 팀 선배에게 한 마디 듣는 모습을 봤다.
전날 홈런 친 이 선수는 순간적인 기쁨을 참지 못하고 조금 큰 액션과 함께 그라운드를 돌았다. 팀이 앞서있고 이미 승부가 갈린 뒤였지만, 선수 개인적으로는 부진 끝에 나온 홈런이라 이해되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훈련을 마친 이 선수에게 상대팀 한 선수가 다가왔다. 당시 최하위였던 상대 팀의 고참 선수는 후배인 이 선수에게 “잘 치더라. 그런데 우리 팀 꼴찌다”라며 매서운 눈초리를 보냈다. 최하위로 처져 있던 상대 선수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얄미워 보였을 행동이다.
덕아웃에서 인터뷰를 하던 중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어쩔 수 없이 듣게 된 선·후배 간 대화는 강렬하게 머리속에 박혔다.
야구는 데이터에 충실해야 하는 종목이지만, 야구하는 선수들도 사람이라 감정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결국 누가 잘못했다고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최근 SK 야구를 보면서 그때 일이 자꾸 생각난다. 이만수 감독 때문이다.
이 감독은 지난 해 8월 감독대행을 맡은 이후 꾸준히 특유의 덕아웃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롤모델’인 제리 매뉴얼(전 뉴욕 메츠)·아지 기옌(플로리다) 감독을 벤치마킹 했다며 “선수들과 호흡하기 위한 것”이라고 여러 번 밝혔다.
SK 타자가 홈런을 치거나 득점 했을 때는 물론, SK 투수가 삼진을 잡아 위기를 넘기기라도 하면 이를 악 물고 주먹을 불끈 쥔 채 몇 차례나 흔든다. 가끔은 흥분한 나머지 덕아웃에서 뛰쳐나올 때도 있다.
SK 투수가 실점 하거나 야수가 실책 할 때 낯빛이 바로 어두워지는 걸 보면 이 감독 특유의 외향적인 성격 때문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원래 성격이 그런 분 같다. 처음부터 그랬으니 이제는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선수들도 여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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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이만수 감독 |
하지만 밑바닥에 처져있는 하위권 팀과 경기할 때는 조금 보기 낯뜨겁다.
이 감독은 지난 주말 최하위 한화와 3연전 중에도 계속해서 승리의 기쁨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이 감독은 한화 선수들이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놓치거나 역전 점수를 내주고 고개 숙인 채 덕아웃을 향하는 순간 보란듯이 주먹을 불끈 쥐며 함성을 질렀다. 올 시즌 한화는 16일까지 SK에 8전 전패, 지난 해부터 따지면 9연패 중이었다.
감독은 선수들이 본받아야 할 선수단 최고 어른이다. 1위팀 감독이 꼴찌팀 선수들 앞에서 노골적으로 승리의 쾌감을 표현하는 것은 ‘어른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스포츠맨십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라는 미덕도 포함돼야 하기 때문이다.
하위팀의 한 투수는 “경기 뒤 버스에서 TV 하이라이트를 볼 때면 (이 감독의 세리머니)그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특히 지고 난 뒤에는 좀 그렇다”며 “‘저것 좀 안 하면 좋겠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대부분 선수들이 싫어한다”고 말했다.
다른 팀의 한 야수는 “타자보다는 마운드의 투수들에게 더 잘 보일 것이다. 상황 따라 적당히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많은 선수들은 이렇게 말했다. “기분은 좋지 않지만 감독님이 그러는 걸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물론 무게 잡지 않는 화끈한 스타일의 이 감독을 좋아하는 팬들도 있다. 그러나 ‘감독님의 세리머니’는 다르다. 감히 아무도 말을 못할뿐, 모두가 즐거워하지는 않는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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