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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그를 야수라고 부르지 말라'
'미녀와 야수'에서 미녀의 사랑으로 저주에서 풀려난 왕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파이터로서의 근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추락한 야수' 밥 샙(38, 미국)의 이야기다.
지난 16일 '로드FC 8'에서 김종대에게 패하며 밥 샙은 종합격투기 9연패를 달성(?)했다. 2009년부터 입식격투기와 종합격투기를 합친 그의 전적은 2승 20패. 마치 패배를 수집하며 다니는 것 같다. 하지만 전적보다 내용이 더 문제다. 승부욕이 부족해 충격만 입으면 반격할 의지가 사라지는 것이다. 심지어 경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웬만해선 1라운드를 넘기는 일이 없다.
이번 김종대와의 대결에서는 2라운드까지 갔지만, 그가 종합격투기에서 1라운드를 넘긴 것은 무려 2004년 제롬 르 밴너와의 경기 이후로 처음일 정도로 예외적인 일이었다. 이긴 2경기 중 하나도 밥 샙을 계속 때리다가 상대가 다쳐서 얻은 승리다.
밥 샙의 이러한 몰락은 그의 충격적인 등장보다 더욱 충격적이다. 2002년 프라이드를 통해 격투기 무대에 처음 모습을 보일 당시의 밥 샙은 실로 '충격'이었다. 온 몸이 근육으로 덮인 150kg의 거구에 한 때 NFL에서 활동했을 정도의 운동신경을 갖춰 특별한 격투기술이 없이도 상대를 압도적으로 요리한 것이다. K-1의 전설인 어네스트 호스트를 두 번이나 무너뜨린 것은 그 중 백미. 당시 프라이드 헤비급 챔피언이던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역시 밥 샙에게 시종일관 압도당하다 힘겨운 역전승을 거둘 정도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달라졌다. 메이저 무대에서 뛰는 것을 포기한 듯 중소 단체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더니 거의 모든 경기에서 패배를 당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 인터뷰에서는 "적은 파이트머니를 받으면서 큰 부상을 입고 싶지는 않다"고까지 말하며 프로 파이터로서의 의식마저 사라졌음을 드러냈다. 자신의 상품성을 이용해 여러 대회를 돌며 조금 위험한 여행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밥 샙의 이와 같은 자세는 대회사 입장에서는 양날의 검이다. 밥 샙의 존재가 흥행에는 확실히 도움이 되지만 진지하지 않은 경기를 펼칠 경우 대회의 격을 떨어트릴 수도 있고 심지어 조작경기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로드FC 8' 대회에서도 경기 전에 제사상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많은 사람들을 경기장으로 동원했고 실제로 밥 샙의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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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사 입장에서 다행인 점은 빠른 시간 안에 안전하게 경기를 마치려는 자세만을 보인 이전 경기들과는 달리 진지하게 김종대와 겨루려 한 것이다. 밥 샙이 이번에 보인 모습은 최근 경기에서 보인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으며 외국 언론에서도 놀라움을 나타낼 정도였다. 그러나 이전의 모습대로 싸운다면 마치 프로레슬링처럼 느껴져 대회 전체의 수준에 금이 갈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맞붙는 선수 입장에서도 장단점이 분명하다. 만약 이긴다면 밥 샙을 꺾은 파이터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지만 자신 역시 이벤트성 대결에 동참하는 것처럼 여겨져 프로 파이터로서의 입지에 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의 연패 기록이 갱신될수록 앞으로 싸우게 될 상대들은 더 큰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이며 이기고도 욕을 먹는 입장이 될 수 있다. 이번에 대결한 김종대 역시 힘들게 싸워 이기고도 많은 비난을 들어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그렇다면 이제 밥 샙을 어떻게 봐야할까? 사실상 이제 그에게 상대를 꺾고자하는 파이터의 호승심을 기대할 수는 없다. 혼신을 다해 관객을 열광시키는 프로다운 경기를 펼쳐주길 바라기도 쉽지 않다. 이벤트성매치에 나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데 의미를 두고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고 누구도 돌려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팬들 스스로 밥 샙을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그를 비난하기보다는 한 명의 엔터테이너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인지도와 흥행력을 이용해 다치지 않고 돈을 벌어 가려는 엔터테이너형 파이터'가 밥 샙의 현재 모습이다. 이제 그에게 케이지에서 격렬한 투쟁을 벌이며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려는 프로 파이터로서의 기대치는 내려놓고 그보다는 다른 기대와 흥미적인 요소를 깔고 보는게 지금의 밥 샙을 현명하게 보는 것일 수도 있다.
원주를 찾은 밥 샙은 이런 말을 했다. "나도 한 때는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남는 것은 없었다. 지금 그렇게 싸운다면 부상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큰 명예를 얻기 어려운 것도 알고 있다. 선수 생활도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예전처럼 치열하게 싸우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날 프로 파이터가 아니라고 하지는 말아 달라.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싸운다. 또한 관객들을 위해 대회장에 오고 즐거움을 주기 위해 힘쓰는 것도 프로 파이터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라고.
올해 한국 나이로 40에 접어든 밥 샙. 이제 그에게 예전의 야수와 같은 모습을 기대하기보다는 야수의 저주에서 풀려난 인간 밥 샙의 본모습을 봐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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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인턴기자 spinach1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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