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로아티아전에서 교체되고 있는 토레스(사진제공 : 게티이미지) |
대회 운영 시스템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유럽축구연맹은 조별 리그 순위를 결정할 때 상대 전적을 중시하고 세 팀이 동점을 이루었을 경우에는 그 팀들 사이의 승점만을 따지는 규정을 적용하면서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조별 리그의 마지막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긴장을 유지시킬 수 있다는 점은 좋지만, 어쨌든 개선의 여지가 있는 규정이다.
승부조작에 관한 한 일가견이 있는 이탈리아는 크로아티아와 스페인의 경기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단스크에서 벌어진 그 경기는 너무 느린 페이스로 진행된 나머지 두 팀이 함께 8강에 오를 수 있는 2-2의 점수가 나오는 건 불가능했다.
스페인은 달팽이처럼 느리게 움직였고, 크로아티아는 상대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뒀다. 처음 70분은 그냥 그렇게 흘러갔다. 이탈리아가 아일랜드를 이기고 있었지만 크로아티아의 슬라벤 빌리치 감독은 우선 스페인의 강공을 막아낸 후 막판에 역습을 펼치는 전략을 썼다.
그건 거의 성공할 뻔했다. 루카 모드리치의 환상적인 패스를 받은 이반 라트키치가 골을 성공시켰다면 이틀 연속으로 지난 월드컵 결승전 진출 팀들이 탈락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스페인에는 수호신 이케르 카시야스가 있었다. 스페인은 평소의 레벨보다 훨씬 더 수준 낮은 경기를 펼치고도 골을 넣었다. 그들에겐 스트라이커조차 필요없었다.
페르난도 토레스는 교체될 때까지 공을 거의 잡아보지도 못했다.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은 4-6-0 포메이션을 고수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건 순수주의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이다. 축구 팀에는 스트라이커가 있다. 그건 축구 경기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진리처럼 여겨져온 사실이다. 하지만 스페인 감독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토레스가 부진하자 감독은 애슬레틱 빌바오의 골잡이 페르난도 요렌테를 교체 투입하지 않고 윙어 헤수스 나바스를 집어넣었다.
그건 성공이었다. 나바스가 스페인의 결승골을 터뜨린 것이다. 델 보스케는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입증했지만, 스페인이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 선방을 펼치고 있는 카시야스(사진제공 : 게티이미지) |
크로아티아는 세 경기에서 모두 잘 싸우고도 탈락했다. 곧 로코모티프 모스크바의 지휘봉을 잡게 되는 빌리치는 대표팀과 선수들을 이끌었던 건 자랑스러운 일이었다고 밝혔다. 크로아티아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대진운이 좋지 않았고, 아일랜드를 마지막 경기에서 만난 이탈리아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한때 이탈리아 감독이었던 지오바니 트라파토니가 이끄는 아일랜드는 껄끄러운 상대였다. ‘트랍’은 40년 동안 감독직을 수행해왔고 축구, 특히 이탈리아 축구 ‘칼치오’에 관한 한 전문가이다. 아일랜드는 경기 내내 이탈리아를 괴롭혔고, 이전 경기에서 팬들이 보여줬던 투지를 이어받은 듯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아일랜드에는 정상급 선수 자원이 부족했다. 안토니오 카사노와 마리오 발로텔리가 터뜨린 골들은 아일랜드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득점 방법이었다. 모든 노력과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 수포로 돌아갔다. 아일랜드는 유로 2012에서 최악의 팀으로 기록될 것처럼 보인다. 스웨덴이 프랑스에게 완패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번 대회에서 아일랜드 선수로는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키스 앤드류스가 경기 막바지에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면서 슬픔은 더욱 커졌다.
트라파토니는 크로아티아전에 패했던 라인업을 그대로 들고 나왔는데, 아마도 아일랜드의 후보 선수들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처럼 보였다. 아일랜드는 월드컵 예선에서 독일, 스웨덴, 오스트리아와 같은 조에 속했고, 올해 73세인 트라파토니의 거취도 불확실해진 상황이다.
한편 이탈리아는 스페인처럼 우여곡절 끝에 조별 리그를 통과했다. 유럽 축구의 강호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상대를 공포에 떨게 했던 예전의 위용은 잃어버렸다. D조의 프랑스, 잉글랜드, 우크라이나 중 두 팀이 그들을 상대하게 될 것이다. 스페인은 위태롭게 왕좌를 지키고 있고, 이탈리아는 아직도 자신들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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