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선동열 감독(사진=KIA) |
"사실상 2013시즌은 일본 오키나와 마무리 캠프부터"
"수비 강화가 우선이다."
"구단에 'FA 선수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외국인 선수 교체한다면 한 명은 마무리 투수가 될 것"
“삼성을 견제할 유일한 팀이다.”
시즌 전이었다. 스프링캠프에서 야구전문가들이 했던 말이다. 여기서 ‘삼성을 견제할 유일한 팀’은 바로 KIA를 뜻하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빈말이 아니었다. KIA는 전해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팀이고, 타선과 마운드에서 합격점을 받은 터였다.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야구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타선만 치자면 어느 팀과 견줘도 모자람이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용규-김선민’의 테이블 세터진과 ‘이범호-최희섭-김상현’으로 이어지는 중심타선 그리고 ‘안치홍-나지완’이 버틴 하위타선은 8개 구단 가운데 상위권이었다.
마운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스프링캠프에서 에이스 윤석민과 서재응은 건재했고, 외국인 투수 앤소니 르루는 인상적인 투구를 펼쳤다. 선동열 감독이 “둘 가운데 누굴 마무리로 쓸지 고민”이라고 말할 정도로 김진우와 한기주의 구위도 나쁘지 않았다. 여기다 선 감독은 5선발감으로 손영민을 점찍으며 그가 ‘제의 이강철’이 되길 기대했다. 호라시오 라미레즈·양현종·박경태·심동섭이 버틴 좌완 투수진도 다른 팀과 비교해 전혀 떨어질 게 없었다.
무엇보다 KIA는 한국시리즈 2회 우승에 빛나는 선 감독과 국내야구계의 최고 이론가 이순철 수석코치를 영입하며 화려한 코칭스태프를 갖췄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스프링캠프 후반기부터 악재가 겹쳤다.
좌완 양현종이 어깨부상으로 재활조에 편입되며 ‘부상 악령’이 KIA를 덮친 것이다. 이어 김진우·한기주·손영민·심동섭도 부상으로 투구를 중단했다. 일부에선 “KIA 투수들의 훈련량이 지나치게 많아 부상자가 속출한다”고 지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부상자들은 계속 부상으로 신음했거나 잠재적 부상을 안고 있던 이들이었다. 스프링캠프에서 선 감독은 자신의 구상을 펼치지도 못한 채 부상 선수들의 재활에만 신경 써야 했다.
시즌이 시작하고서도 부상자는 속출했다. 라미레즈가 어깨 부상으로 퇴단 위기에 몰리고, 다른 좌완 투수들이 부상에서 완쾌하지 못하며 좌완 마운드는 붕괴했다. 타선에서도 이범호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장기간 1군을 떠났고, 김상현 역시 손바닥 골절 부상으로 오랜 기간 개점휴업했다. 최희섭은 개인사로 정신적 고통과 훈련 부족으로 신음하며 팀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KIA는 시즌 내내 승률 5할을 오르내리며 4강 싸움을 펼쳤다. 하지만, 행운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KIA는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선동열 감독 “내년 시즌 대대적인 팀 체질개선에 나서겠다.” 선 감독은 '2군 운용'을 시스템화시킬 예정이다(사진=KIA)
성적만 보자면 올 시즌 KIA는 실패한 팀이 맞다. 그러나 좌완 투수진이 붕괴하고, 3·4·5번 중심타자들이 빠진 가운데서도 4위 싸움을 펼친 건 고무적이었다. 역대 한국프로야구사에서 3-4-5번 타자가 동시에 1군에서 제외되고도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팀은 거의 없다.
9월 22일 목동구장 원정팀 감독실에서 만난 선 감독은 TV를 통해 ‘SK-두산’전을 보고 있었다. 선 감독은 TV를 보며 혼잣말을 하듯 “투수들이 포수가 원하는 곳으로 공을 던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덧붙여 “역시 야구는 수비 싸움”이라고 했다. 어쩌면 두산과 SK를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KIA의 현재를 고백하는 것인지 몰랐다.
선 감독은 TV를 끄고서 “올 시즌 포스트 시즌 진출은 좌절됐지만, 깨달은 게 많다”고 말문을 열었다.
“올 시즌 부상자가 속출하며 애초 구상했던 야구를 실천하지 못했다. (현역선수 명단을 내보이며) 시즌 끝까지 부상자가 나오고 있다. 이용규는 충수염, 김원섭은 피로 누적, 유동훈과 최향남도 몸이 좋지 않아 1군에서 빠졌다. 올 시즌을 돌아보자면 투수진에서 선발은 썩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불펜은 아쉬움이 많았다. 1, 2이닝을 버틸 투수가 부족했다. 마무리 부재도 한몫했다. 그나마 유동훈, 최향남이 분전하고 젊은 투수들이 가능성을 보인 게 다행이었다. 타선도 비슷했다. 주변에선 'KIA 희생번트가 많아졌다‘고 하지만, 중심타선이 건재했다면 그렇게 많은 번트를 대지 않았을 것이다. 중심타자들이 사라지고, 장타가 줄면서 어떻게든 득점권 상황에 주자를 둬야 했다. 하지만, 부상만 탓할 순 없는 일이다. 올 시즌을 통해 얻은 교훈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팀 체질 개선에 나설 생각이다.”
선 감독은 이미 내년 시즌 구상을 끝낸 터였다. 선 감독이 구상하는 팀 체질 개선은 세 가지로 집약된다. 우선 수비력 강화다.
“SK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2위 싸움을 펼치는 건 강한 수비 덕분이다. 야수들 모두 수비가 뛰어나다. 우리 팀 야수들도 수비는 열심히 한다. 하지만,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건 차이가 있다. 안치홍을 예로 들자. 광주구장이 인조잔디일 때 안치홍의 수비는 괜찮았다. 그러나 천연잔디 구장으로 바뀌고부턴 수비에서 문제점을 노출했다. 하체가 먼저 움직여야 하는데 아직도 상체 먼저 움직이며 좌우 타구 처리능력이 떨어지고 있다. 이점을 개선해야 ‘잘하는 수비수’가 된다. 외야도 마찬가지다. 한발 먼저 타구지점을 포착해 한발 먼저 다가가는 수비가 필요하다. 수비가 강한 팀을 만들려면 방법은 연습밖에 없다. 40여일 간의 일본 오키나와 마무리 훈련 때 수비 훈련에 치중할 생각이다.”
두 번째는 트레이닝과 2군 시스템 변화다.
“올 시즌 부상자가 많았다. 문제는 부상 발생이 아니라 재발방지와 회복속도 향상이다. 내년 시즌에도 부상이 발목을 잡는다면 큰일이다. 올 시즌까진 말 없이 지켜봤지만, 내년 시즌부턴 트레이닝 시스템에 변화를 줄 생각이다. 2군 강화도 필요하다.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지며 2군 선수들을 계속 눈여겨보면서 1군으로 승격시키길 반복했다. 하지만, ‘확’ 눈에 띄는 2군 선수가 태부족했다. ‘선수층이 얇아도 이렇게 얇을 수 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강팀이 되려면 2군에서 많은 유망주를 키우고, 1군에서 경험을 쌓도록 도와주는 돕는 길밖에 없다. 과거 삼성 때처럼 원활한 선수 수급을 위해 구단과 상의해 2군 운용을 시스템화할 생각이다. 물론 젊은 선수들의 과감한 1군 기용은 내년에도 변함없을 것이다.”
올 시즌 김선빈은 KIA 중심타자들보다 몇 배나 영양가 높은 활약을 펼쳤다(사진=KIA) |
마지막으로 선 감독이 구상하는 내년 시즌 팀 체질 개선책은 FA(자유계약선수) 영입이다. 선 감독은 삼성 사령탑 시절 FA 영입을 멀리했다. 그보단 가능성 있는 젊은 선수를 키워 1군 요원으로 쓰는 걸 선호했다. 현재 삼성의 주축 선수 대부분이 선 감독 재임 시절 가능성을 현실로 꽃피웠던 이들이다. 그러나 KIA와 삼성은 다르다. KIA는 삼성처럼 2군 시스템이 확실히 자리 잡은 것도 아니고, 선수층이 두텁지도 않다. 무엇보다 올 시즌 KIA는 포스트 시즌 진출에 좌절하며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길 마냥 기다리기엔 시간적 여유가 없다.
선 감독은 내년 시즌 포스트 시즌 진출과 기존 선수들의 자극 차원에서도 FA 영입이 반드시 필요하단 입장이다.
“이미 구단에 ‘이번에 나오는 FA 가운데 팀에 필요한 선수가 있다면 꼭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가능하다면 한 명이 아닌 복수의 FA를 잡고 싶은 게 속마음이다. 그래야 팀도 강해지고, 젊은 선수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며 기존 선수들에게 자극도 줄 수 있다. 여러 각도에서 이번엔 나올 FA 선수들을 꾸준히 관찰하고 있다.”
지난해 선 감독은 구단에 별 요구를 하지 않았다. FA로 풀렸던 정대현(롯데)를 잡아달라는 요청 정도만 했다. 그러나 정대현은 롯데 유니폼을 입었고, KIA는 일찌감치 FA 시장에서 발을 뺐다. 그러나 올 시즌은 선 감독의 강력한 요청과 객관적인 팀 사정에 비춰 KIA가 FA 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시즌 KIA의 팀 칼라 변화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 감독은 외국인 투수에 대해서도 “앤소니와 헨리 소사 모두 좋은 투수다. 그러나 내년 시즌 팀 전력 강화를 위해선 한 명만 남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만약 외국인 투수 한 명이 교체된다면 어떤 선수가 충원될까.
선 감독은 “팀 사정상 마무리 투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만약 교체 카드를 든다면 한 명의 외국인 투수는 선발보단 마무리 투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초보 감독 만큼 어려운 신임 감독 내년 시즌 KIA 수비진은 어떻게 변화할까(사진=KIA)
야구계엔 ‘초보 감독만큼 힘든 게 신임 감독’이란 말이 있다. 그도 그럴 게 신임 감독이 그 팀을 파악하는 덴 시간이 필요하다. 팀 색깔과 분위기 그리고 선수들의 면면을 알려면 최소 1년이 걸린다. 선수들 역시 새 감독의 의중과 작전을 파악하려면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다.
선 감독이 비록 KIA의 전신이었던 해태에서 오랫동안 선수로 뛰었다지만, 그는 지도자 생활의 대부분을 삼성에서 보냈다. 그에게 KIA는 그저 친정팀이지, 지도자로선 생·소·한 팀이었다. 그런 팀을 맡아 선 감독은 올 시즌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교훈을 얻었다. 특히나 팀이 4강 싸움을 펼치는 가운데서도 선 감독은 무리한 선수기용과 혹사를 멀리하며 ‘지금’보다 ‘내일’을 중시했다.
많은 감독이 팀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그것을 극복하려는데 주저하는 반면, 선 감독은 적극적으로 팀 체질 개선에 나서려 한다. 그것만으로도 KIA의 내년 시즌은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KIA 감독으로서의 선 감독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내년부터일지 모른다.
(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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