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은 미국 진출을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류현진이나 그의 부모나 항상 "구단에 폐를 끼치면서까지 무리해 미국으로 진출하고 싶진 않다"며 밝히며 조심스러워한다. 류현진의 미국진출 논란은 선수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흘러간다는 게 문제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요즘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 가능성을 묻는 말들이다.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성공 가능성을 묻는다면 할 말은 하나다. “누구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도 비슷한 생각인 듯싶다. 그들은 “류현진이라면 같은 왼손투수이자 아시아 선수인 첸 웨인(볼티모어)에 버금가는 성적을 낼 것”이라고 자신한다.
언뜻 립서비스처럼 들린다. 그러나 고작 그런 립서비스를 하려고 메이저리그 부단장급 인사가 한국까지 날아오진 않았을 것이다. 상품을 지켜보는 사람보다 사려는 사람의 눈이 더 정확하다는 걸 고려하면 류현진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과장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 가능성을 묻는다면 답은 곤궁해진다. 전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미국에서의 성공여부가 류현진 자신에 달렸다면, 미국 진출 여부는 류현진 자력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올 시즌이 끝나 류현진이 FA(자유계약선수)가 돼도 국외로 진출하려면 구단 동의를 받아야 하는 7년 차 FA인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류현진의 미국행 티켓은 소속구단 한화가 쥐고 있다.
여기서 잠시 한국 프로야구 출신 가운데 국외 진출에 성공한 선수들의 전례를 살펴보자. 이들의 국외 진출 방식은 대개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먼저 ‘필요형’이다. 선수와 소속구단, 국외구단 모두 서로를 필요로 한 경우다. 대표적인 예는 1997년 12월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로 진출한 해태 이종범이다.
1997시즌이 끝나자 이종범은 “선동열 선배의 뒤를 이어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하겠다”며 국외 진출 의사를 강하게 내비쳤다. 표면적으로 해태는 ‘일본 진출 불가’ 방침을 내세웠다. 그러나 모그룹 자금난을 고려해 내심 거액의 이적료를 바랐다. 주니치 역시 이종범을 ‘한국의 이치로’로 생각한 터라, 그의 영입을 절실하게 원했다. 선수, 소속구단, 국외구단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 이종범은 총 5억8천만 엔에 주니치로 임대됐다. ‘눈물’로 국외진출을 호소했던 현대 정민태도 이종범과 비슷한 케이스였다.
두 번째 유형은 ‘독자노선형’이다. 선수, 소속구단 가운데 어느 한 쪽만 국외진출을 강력하게 희망한 경우다. 1998시즌을 끝으로 일본 주니치로 이적한 LG 이상훈이 대표적이다. 당시 이상훈은 선동열, 이종범의 일본구단 임대를 보며 국외진출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LG는 리그 최고의 왼손투수 이상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해태와 달리 LG는 자금난과는 거리가 먼 회사라, 이적료를 구단 운영비로 쓸 이유도 없었다. 이상훈은 “이때부터 우격다짐이 시작됐다”고 회상한다. 사실이다. LG는 ‘야생마’ 이상훈의 우격다짐에 두 손 들었다. 이상훈이 선수협을 조직하려고 동분서주하자 구단은 ‘그냥 두는 것보다 어디로 잠시 보내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LG는 이상훈의 일본 진출을 허락했고, 적지 않은 이적료를 위자료 삼아 결별했다.
세 번째 유형은 ‘도전형’이다. 소속구단, 국외구단의 반응은 미지근하나, 선수 자신의 국외진출이 강력했던 경우다.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임창용이 좋은 예다. 2007시즌이 끝나고 임창용이 국외진출을 선언했을 때 삼성은 선뜻 “본인이 원하면 허용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당시 삼성 사령탑이던 선동열 감독도 ‘가는 임창용’을 붙잡지 않았다. 결국 임창용은 그해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30만 달러에 계약했다. 30만 달러는 일본 프로야구 외국인 선수 최저연봉으로, 헐값도 그런 헐값이 없었다. 야쿠르트가 임창용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임창용은 ”실력으로 자신의 향후 가치를 인정받겠다“면서 낮은 몸값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결과적으로 임창용은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선수 가운데 가장 성공했다.
결론적으로 필요형이든, 독자노선형이든, 아니면 도전형이든 한국 프로야구 출신의 국외진출에서 캐스팅보드를 쥔 쪽은 역시 구단이다. 구단의 동의와 양해없이 국외진출에 성공하기란 매우 어렵다. 지난해 연말 오릭스 버펄로스 유니폼을 입은 이대호처럼 완전한 FA 자격을 취득하지 않는다면 구단의 결정권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 논의를 보자면 ‘독자노선형’에 가깝다. 선수와 국외구단은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소속구단은 선수의 잔류를 바란다. 그렇다고 류현진이 과거 이상훈처럼 우격다짐으로 자신의 미국행을 관철할 것 같진 않다. 그랬을 때의 예상치 못한 파장과 불필요한 잡음을 류현진 자신이 잘 알고 있고, 무엇보다 그는 한국야구와 한화를 존중한다.
류현진의 국외행을 바라는 이들은 ‘필요형’이 되길 바란다. 그게 가장 이상적이다. 류현진은 미국행으로 자신의 오랜 꿈을 이루고, 소속구단 한화는 포스팅 금액으로 팀 재건과 야구장 시설 확충에 애쓰며, 국외구단은 팀에 꼭 필요한 선발투수를 얻게 된다면 그보다 좋은 결과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한화가 끝까지 류현진의 미국행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구단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2014시즌이 끝날 때까지 류현진은 한화 소속이고, 그는 한화 전력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선수다. 일부에선 한화가 대승적 차원에서 류현진의 미국행을 허락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프로야구단의 항구적 목표는 ‘좋은 성적과 많은 수익’이다. 사실 그보다 상위의 대승적 목표도 없다.
따지고 보면 류현진만 팀을 위해 고생한 것도 아니다. 한화 유니폼을 입은 모든 선수가 자신의 더 나은 삶과 자신의 근무처인 구단 그리고 자신의 고객인 팬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7년 동안 팀을 위해 희생했다는 이유만으로 구단에 ‘류현진을 놔주라’고 하는 건 그래서 더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보단 류현진이 미국에 진출했을 때의 장단점을 포괄해 설명하는 게 온당하다.
요즘 류현진의 국외 진출 논란을 볼 때마다 우려스러운 것도 그 때문이다. 류현진의 국외진출을 독려하는 쪽은 ‘정의’, 류현진의 국외진출을 반대하는 쪽을 ‘악’으로 모는 태도다. 한화를 가리켜 젊은 선수의 밝은 미래를 가로막는 ‘악의 집단’식으로 비유하는 글을 볼 때마다 고개가 갸웃해진다. 선수가 오랜 꿈을 펼치려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게 당연하듯 구단이 팀의 미래와 전력공백을 우려해 소속선수의 미국행을 주저하는 것 역시 당연한 태도다. 게다가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하는 걸 지켜보길 바라는 이들이 있듯 그가 남은 기간 동안 한화 에이스로 뛰길 바라는 팬도 있다.
물론 일련의 한화 자세를 봐도 의문이 있긴 하다. 한화는 류현진의 국외진출 논란이 일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신임감독의 의사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고 했다. 결국 신임감독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류현진의 거취가 결정될 것이란 뜻이다.
이건 책임있는 구단으로서 할 소리가 아니다. 이유가 있다. 감독은 당장의 성적을 고민하지만, 구단은 미래 비전을 고민한다. 그것이 상식적인 구단이 할 일이다. 류현진처럼 팀의 에이스이자 리그를 압도하는 슈퍼스타는 구단의 미래를 쥐고 있는 선수다. 구단은 ‘올 시즌이 끝나면 류현진이 우리팀에서 뛰어봤자 2년일 텐데’할지 모르나, 류현진이 앞으로 뛸 2년간 팀을 더 강하게 만들고, 그 2년간을 토대로 팀을 항구적 강팀으로 만드는 것이 구단의 업무이자 의무이다.
그런데도 한화는 ‘신임감독의 의사에 따라 좌우될 것’이란 소리만 하고 있다. 구단의 미래 비전마저, 팀에서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슈퍼스타의 거취마저 신임감독에게 맡길 거라면 구단 단장은 왜 있고, 사장은 왜 필요하나. 차라리 ‘신임감독이 우리 대신 책임지고, 비난받아줬으면 좋겠다’고 솔직히 밝히는 게 낫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시즌 중에 소속선수의 거취 여부는 표명하지 않겠다. 시즌이 끝나고 무엇이 선수와 구단의 미래를 위해 좋을지 심사숙고 끝에 결론을 도출하겠다”고 확실하게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것이 선수의 혼란과 수많은 억측을 막고, 구단이 고민할 시간을 버는 방법이다.
<스포츠춘추>를 비롯해 많은 이가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당당히 승부를 겨루길 바라고 있다. 그의 성공을 기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바람이 원칙과 상식을 뛰어넘어선 안 된다. 류현진의 미국진출 여부는 선수와 구단의 면밀한 검토와 대화를 통해 해결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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