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구 발언을 한 다르빗슈 ⓒ gettyimages/멀티비츠 |
다르빗슈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을 때, 미국 전문가들과 팬 사이에서 화제가 된 것 중 하나는 그의 일본프로야구 시절 투구수였다.
다르빗슈는 지난해 일본에서 28경기에 선발로 나서 평균 121구를 던졌다. 반면 메이저리그 1위는 116개를 기록한 저스틴 벌랜더였다(1988년 이후 평균 120구를 넘긴 ML 투수는 없다). 다르빗슈는 28경기 중 15경기에서 120구 이상을 던졌고, 7경기에서는 130개를 넘겼다. 반면 벌랜더가 34경기에서 120구를 넘긴 것은 10번에 불과했다. 그리고 지난해 2429경기가 열리고 4858명의 선발투수가 나선 메이저리그에서 130구 이상의 투구수가 기록된 것은 단 4번(벌랜더, 팀 린스컴, 로이 할러데이, 크리스 카펜터)뿐이었다. 지난해 다르빗슈의 최다 투구수는 145구였으며, 메이저리그 투수의 최다 투구수는 133구(린스컴)였다.
2010년은 한 술 더 떠, 다르빗슈는 선발 25경기에서 평균 129개의 공을 던졌으며, 11경기에서 130개 이상을 기록했다. 심지어 4월17일부터 5월8일까지 4경기에서는 148구-135구-150구-156구를 차례대로 던져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다르빗슈라고 해도 메이저리그에서 일본 시절과 같은 투구수를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4경기에서 다르빗슈는 각각 6일, 7일, 6일, 7일을 쉬고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4일 휴식이 기본이며, 가끔씩 5일 휴식이 찾아올 뿐이다. 여기에 일본과 비교할 수도 없는 이동거리, 시차와도 싸워야 한다. 실제로 다르빗슈는 4월30일 홈경기가 동부 시간으로 오후 11시에 끝난 후 다음날 새벽 토론토에 도착, 다시 오후 8시에 열린 첫 장거리 원정 등판에서 메이저리그 일정의 피로감을 실감한 바 있다. 그나마 워싱턴 감독이 넉넉하게 잡아주고 있는 다르빗슈의 올시즌 평균 투구수는 108구로, 벌랜더(113구) CC 사바시아(112구) 제임스 실즈(111구)에 이은 ML 4위에 해당된다.
메이저리그도 무지막지한 투구수가 기록되던 시절이 있었다. 1920년 브루클린 다저스의 레온 캐도어와 보스턴 브레이브스의 조 오슈처는 1-1로 끝난 26회 연장전에서 나란히 완투를 했는데(조명 시설이 없던 당시는 일몰로 인한 무승부가 종종 나왔다) 캐도어가 던진 공은 345개, 오슈처가 던진 공은 319개였다.
많은 투구수는 라이브볼 시대 투수들의 전유물 만이 아니었다. 1963년 후안 마리칼이 16이닝 완봉승을 거두고 워렌 스판이 15.1이닝 1실점 완투패를 당한 경기에서(윌리 메이스 16회말 끝내기 홈런) 마리칼은 227구를 던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974년 놀란 라이언은 13이닝 3실점(10볼넷 19삼진)을 기록한 경기에서 259구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라이언은 1989년에도 9월13일 캔자스시티전에서 8이닝 164구를 기록한 바 있는데, 그 경기에서 라이언의 나이는 42세224일이었다(한편 1988년 이전의 투구수는 비공식 기록들이다).
진정한 괴물이었던 놀란 라이언 ⓒ gettyimages/멀티비츠 |
그렇다면 요즘의 선발투수들은 왜 많은 공을 던지지 못할까. 이에 대해 명예의 전당 투수인 데니스 에커슬리는 "타자들이 더 커지고 더 강해졌으며, 더 뛰어나졌기 때문(bigger, stronger, better, and they hit better)"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1991-1992년 US셀룰러필드-캠든야즈 개장을 시작으로 다시 야구전용구장 시대가 열리면서 구장 규격이 작아진 점, 타자들이 한 동안 스테로이드라는 '치트 키'를 사용한 점도 투수와 감독들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물론 과거에도 베이브 루스나 테드 윌리엄스처럼 투수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 비현실적인 타자들은 존재했다. 문제는 과거에는 뛰어난 타자와 그렇지 못한 타자의 차이가 컸던 반면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라이언이 259구를 던졌다는 1974년, 아메리칸리그 타자들의 평균 장타율은 3번이 .401, 4번이 .419였으며, 8번은 .338, 9번은 .313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3번이 .457, 4번이 .459, 8번이 .366, 9번이 .340이다(1974년이 이미 지명타자가 도입되고 난 후인 반면, 올해 AL 9번타자의 성적에는 인터리그 원정경기에서의 투수 성적이 포함되어 있다). 1974년 4번타자들이 기록했던 장타율(.419)은 올시즌 7번타자들(.420)보다도 낮다. 그나마 이는 많이 나아진 것으로, 타고투저의 절정이었던 2000년 아메리칸리그 4번타자의 평균 장타율은 .522, 8번타자는 .413였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과거의 투수들은 하위 타선을 상대로는 힘을 빼고 던지다 안타를 맞게 되면 다시 파워 게이지를 높여 이닝을 마무리했던 반면, 지금은 하위 타선에게 맞는 안타더라도 홈런이 되기 쉽다. 이는 같은 시대 다른 리그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데, 메이저리그에서 오랫동안 뛴 후 일본야구를 경험한 한 투수는, 메이저리그에서는 공을 던진 후 '아차' 싶은 느낌이 들면 여지없이 담장을 넘었던 공이 일본에서는 무사하기도 한 것을 경험한 후 두 리그의 차이를 느꼈다고 한 바 있다. 이는 다르빗슈를 비롯한 일본 투수들이 짧은 휴식일과 긴 이동거리 문제를 떠나 메이저리그에서 많은 공을 던질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최근 메이저리그는 투수들이 다시 힘을 얻고 있는 중이다. 새로운 구장들은 다시 커지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선수 전원이 혈액 검사를 받는다. 계속해서 메이저리그에 도착하고 있는 새로운 분석 장비와 신기술들은 타구 방향/수비 위치 분석에서 가장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어, 점점 더 정밀한 수비 시프트를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는 투수 쪽에서 작은 반격이 시작됐을 뿐, 1990년 이후 시작된 타자 우위의 균형이 바뀌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르빗슈의 소속팀인 텍사스는 메이저리그에서 선발투수의 투구수에 가장 관대한 구단이다. 42살에 164구를 던졌던 놀란 라이언이 구단주로 있으며, 롱토스 훈련법을 가장 앞장서서 받아들였다. 워싱턴 감독과 매덕스 코치도 선발투수의 투구수를 다른 구단들보다 느슨하게 가져가고 있다. 그러나 올해 텍사스 선발진에는 부상(펠리스 홀랜드 루이스)이 몰아치고 있는 중이다(물론 이를 투구수 문제와 연관시키기에는 좀더 체계적인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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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다르빗슈가 메이저리그에서 150구를 던지는 날은 과연 올 수 있을까. 1990년 이후 최다 투구수는 팀 웨이크필드가 1993년 4월28일 애틀랜타전에서 기록한 172구다. 웨이크필드를 제외하면 1992년 데이빗 콘이 던진 166구가 최고 기록으로, 메이저리그에서는 2000년 론 빌론과 2005년 리반 에르난데스가 각각 9이닝 동안 정확히 150구를 던진 이후, 아메리칸리그에서는 1997년 랜디 존슨이 9이닝 155구를 기록한 이후 더 이상 150구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한편 2005년 에르난데스 이후, 딱 한 번 150구가 위협을 받은 적이 있었다. 2010년 6월26일 탬파베이전에서 에드윈 잭슨(당시 애리조나)이 8볼넷 노히트노런을 따내면서 149개의 공을 던진 것. 앞으로도 150구 경기는 노히트노런이나 20K에 도전하지 않는 한, 그 모습을 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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