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그레인키 ⓒ gettyimages/멀티비츠 |
2002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6순위 지명으로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유니폼을 입은 잭 그레인키(28)는, 2004년 만 20세의 나이로 데뷔 '제2의 그렉 매덕스'라는 찬사를 받았고 선발 24경기에서 8승11패 3.97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듬해 그레인키는 리그 최다패 투수가 됐다(5승17패 5.80). 그리고 그 이듬해 스프링캠프에서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 원인은 우울증과 대인공포증 사회 불안. 캔자스시티 구단은 그레인키에게 치료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을 줬다. 결국 그레인키는 시즌 종료 보름을 남겨놓고 건강하게 돌아왔다.
이듬해인 2007년, 그레인키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7승3패 3.69). 그리고 다시 풀타임 선발투수로 돌아온 2008년에는 13승(11패)을 따내며, 캔자스시티 투수로는 1997년 케인 에이피어(9승13패 3.40) 이후 가장 좋은 3.4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009시즌을 앞두고 캔자스시티는 그레인키에게 4년간 3800만달러 계약을 선물했다. 그레인키(16승8패 2.16)도 팀에 역대 4번째 사이영상을 안기는 것으로 화답했다(1985,1989 브렛 세이버하겐, 1994 데이빗 콘). 조정 평균자책점 205는 페드로 마르티네스(1999-2000, 2002-2003) 이후 아메리칸리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온 200+ 기록이었으며, 10.1의 WAR 역시 아메리칸리그에서는 2000년 페드로 마르티네스(11.4), 메이저리그에서는 2002년 랜디 존슨(10.4) 이후 처음 나온 투수 10.0+ 기록이었다. 그 해 리그 2위 로이 할러데이의 기록은 6.6, NL 사이영상 팀 린스컴의 기록은 7.1이었다. 캔자스시티는 그를 믿고 기다렸고, 그레인키는 그런 팀을 위해 FA 첫 2년을 포기했다. 그레인키는 캔자스시티 선수로는 16년 만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표지 모델이 됐다.
그러나 밀월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듬해 그레인키는 더 이상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며 10승14패 4.17에 그쳤다. 캔자스시티는 리빌딩을 더 확실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레인키를 팔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캔자스시티는 알시데스 에스코바를 비롯한 4명의 유망주를 받고 그레인키를 밀워키에 넘겼다. 반대로 밀워키로서는 돼지 저금통까지 깨서 마련한 승부수였다.
출발은 좋지 않았다. 그레인키는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농구를 하다 다쳐 4월을 날렸으며, 첫 12경기에서 평균자책점 5.66(7승3패)에 그쳤다. 하지만 이후 16경기에서 2.61(5승2패)을 기록하고 시즌을 끝냈으며, 올해는 사이영상 수상 후 최고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16경기 9승2패 2.82). 그레인키는 팀의 수비력을 배제한 지표인 FIP에서 ML 1위(2.22)에 올라 있으며(2위 스트라스버그 2.28)크게 무너진 2경기(6이닝 15실점)를 제외한 나머지 14경기의 성적은 9승 1.59다.
2009 [ERA] 2.16 [WHIP] 1.07 [AVG] .230 [FIP] 2.16
2010 [ERA] 4.17 [WHIP] 1.25 [AVG] .260 [FIP] 4.17
2011 [ERA] 3.83 [WHIP] 1.20 [AVG] .245 [FIP] 3.83
2012 [ERA] 2.82 [WHIP] 1.17 [AVG] .251 [FIP] 2.22
특히 그레인키는 홈구장인 밀러파크에서 지난해 11연승에 이어 올해도 6경기에서 4승 1.08을 기록함으로써 22경기(21선발)에서 15승 2.47을 기록하고 있다. 홈 15연승은 1932-1933년 자니 앨런(양키스 16연승) 1980-1982년 라마 호이트(화이트삭스 16연승) 1998-1999년 케니 로저스(오클랜드 15연승)에 이은 역대 4번째이자 NL 최초의 기록으로, 같은 기간 밀워키는 그레인키를 내보낸 홈경기에서 20승1패, 그렇지 않은 경기에서 57승42패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그레인키가 과거의 위력을 되찾은 비결은 무엇일까. 2009년 그레인키의 비결은 슬라이더였다. 당시 그레인키는 우타자 좌타자 가릴 것 없이 승부구로 슬라이더를 던졌는데, 타자들은 뻔히 슬라이더가 들어올 걸 알면서도 전혀 대처하지 못했다. 타자들이 그레인키의 슬라이더에 방망이를 내 정타를 만들어낸 비율은 3.4%에 불과했으며, 슬라이더의 44%에 헛방망이가 돌아갔다.
시즌이 끝난 후, 메이저리그의 모든 팀들이 그레인키의 슬라이더를 연구했다. 그리고 방법을 찾아냈다. 이듬해 시즌이 개막하자마자, 그레인키의 슬라이더는 맞아나가기 시작했다. 제이크 피비가 2007년 트리플 크라운과 만장일치 사이영상을 따낸 비결 역시 슬라이더였다. 하지만 피비가 몸에 이상이 오면서 어쩔 수 없이 슬라이더 비중을 줄여야 했던 반면, 그레인키는 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슬라이더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 2년간, 그레인키는 슬라이더 대신 체인지업과 커브를 테스트했다. 그러나 슬라이더 만큼의 효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 그레인키가 찾아낸 돌파구는 바로 컷패스트볼이다. 겨우내 커터 연마에 전념했던 그레인키는 그동안 전혀 던지지 않았던 90마일짜리 커터를 올해 14% 가량 던지고 있는데, 이는 93마일짜리 패스트볼과 85마일짜리 슬라이더 사이에서 작동하며 타자들에게 엄청난 괴로움을 안겨주고 있다. 특히 슬라이더가 강력했지만 벗어나는 볼도 많았던 반면, 커터는 '1년차 구종'이라는 것이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은 제구를 보이면서, 그레인키는 데뷔 첫 해(1.6) 이후 가장 좋은 9이닝당 1.9개의 볼넷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요바니 가야르도(6승6패 3.87)가 번번히 마지막 계단을 넘지 못하면서, 그레인키에 대한 밀워키의 의존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밀워키의 큰 고민은 올시즌 후 그레인키의 계약이 끝난다는 것이다.
그레인키는 밀워키도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선수다 ⓒ gettyimages/멀티비츠 |
밀워키의 연고지 규모는 메이저리그 구단이 있는 26개 도시 중 가장 적은 155만 명 수준이다(출처 <괴짜야구경제학>). 이는 뉴욕(1889만)의 12분의1 수준이며, 단일 팀 도시로는 가장 큰 댈러스-포트워스(637만)의 4분의1에도 미치지 못한다. 심지어 클리블랜드(207만)와 캔자스시티(203만)도 밀워키보다는 많다. 그럼에도 밀워키는 열성적인 팬들이 경기장을 많이 찾아주고 있으며(평균 3만5052명 ML 11위) 마크 아타나시오 구단주도 그에 걸맞는 연봉총액(9800만 ML 10위)을 유지해주고 있다. 그러나 얼마전 등장한 맷 케인의 계약(6년 1억2750만)은 재계약에 대한 조금의 가능성마저 날려버린 셈이 됐다.
애초에 팜을 털어 그레인키와 숀 마컴(5승3패 3.39)을 데려왔을 때, 밀워키의 계획은 온전한 2년짜리 승부수였다. 그러나 현재 밀워키는 선두 신시내티와 7경기가 벌어진 지구 4위에 그치고 있으며, 와일드카드 순위에서도 8위에 불과하는 등 상황이 대단히 좋지 않다. 특히 마무리 존 액스포드의 난조(지난해 46세이브/2블론 1.95, 올해 13세이브/4블론 5.04)가 팀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만약 7월초까지 반등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밀워키는 올시즌 후 FA가 되는 그레인키(1350만) 랜디 울프(950만)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800만) 마컴(772만)을 모두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는 것으로 판매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리빌딩을 시작하거나, 어쩌면 시즌 후 다시 그레인키를 잡기 위해 나설 수도 있다.
현재 트레이드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선발투수들은 그레인키와 함께 콜 해멀스(10승4패 3.08) 맷 가르자(3승6패 4.06) 라이언 뎀스터(3승3패 2.11) 프란시스코 리리아노(2승7패 5.40) 제이슨 바르가스(7승7패 4.54) 등이다. 하지만 어틀리가 돌아온 필라델피아는 하워드와 할러데이의 가세까지 한 번 기다려 볼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양키스-디트로이트-세인트루이스 등의 컨텐더 팀들이 생각하는 '결정적인 한 방'은 그레인키가 될 가능성이 높다. 수요가 많아질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트레이드 시장의 원리다.
과연 밀워키는 경매 시장에서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사왔던 그레인키를 다시 경매 시장에 내놓게 될까. 에이전트 없이 지난 겨울을 보내며 밀워키가 협상 기회를 놓치게 만든 그레인키는 현재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또 누가 그레인키라는 결적적인 승부수를 띄우게 될까. '2009년에 버금가는 그레인키'라면 남은 시즌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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