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불펜투수 김성배(사진=롯데) |
‘아빠’. 김성배는 두산 김진욱 감독을 그렇게 불렀다. 둘 다 두산 2군에 있을 때 이야기다.
“김 감독님을 ‘아빠’라고 불렀어요. 그만큼 절 잘 챙겨주시던 분이셨어요.”
2009년 김성배는 은퇴를 고려했다. 야구가 되지 않았다. 무승에 그쳤다. 평균자책도 9.50에 이르렀다. 설상가상 부상까지 당했다. 2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 제구가 되지 않았다. 절망한 김성배는 야구가 아닌 다른 일을 찾기로 했다.
그때 김성배를 잡은 이가 있었다. 당시 2군 투수코치였던 김진욱이다. 김진욱은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은퇴할 때 하더라도 젖먹던 힘까지 써보고, 그래도 안 되면 결정하라”고 했다. 김성배는 다시 공을 잡았다. 죽기 살기로 던졌다. 부족한 점은 김진욱이 채워줬다.
2011년 김성배는 31경기에 등판했다. 3승4패 14홀드 2세이브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은 5.58. 다소 높았다. 그래도 8월엔 11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 1.69를 기록했다. 야구전문가들은 “올해보다 내년이 기대된다”는 덕담을 들려줬다. 김성배도 내년이 더 자신 있었다.
호재도 있었다. ‘아빠’ 김진욱이 1군 감독이 된 것이다. 김성배는 기뻤다. 든든한 후원자가 생긴 것 같았다.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진욱이기에 안심도 했다. 하지만, 그해 11월. 김성배는 두산 유니폼을 벗었다. 자의가 아니었다.
“제가 2차 드래프트에 나오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가뜩이나 김 감독님이 1군 사령탑을 맡으셨기에 더 충격이었던 게 사실이에요.”
김성배뿐만이 아니다. 많은 이가 놀랐다. 두산의 보호선수 40명에서 그가 빠질 줄 몰랐다. 두산에서 사이드암 요원이라곤 고창성과 김성배 정도였다. 그런 사이드암의 한 축이 빠지다니.
김성배는 이유가 궁금했다. 왜 자기가 빠져야 했는지를 말이다.
“김진욱 감독님이 왜 절 제외했을까. 계속 의문으로 남았어요. 늘 제게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시던 분인데요. 그저 여러 이유가 있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버림받은’ 김성배를 기다린 건 절망이 아니었다. 희망이었다. 그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속구 구속이 올랐다. 제구도 잡혔다. 4월 개막전부터 6월까지 승승장구했다. 40경기에 등판해 2승 2패 9홀드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은 2.14. 롯데 불펜에서 이승호 다음으로 좋았다. 특히나 정대현이 부재한 가운데 김성배는 불펜에서 가장 믿을만한 사이드암이었다.
올 시즌 김성배의 성적표는 'A'다. 69경기에 등판해 3승 4패 14홀드 2세이브 평균자책 3.21을 기록했다. 2005년 이후 최고 활약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포스트 시즌에서도 그의 활약은 계속될 전망이다. 준플레이오프 출전 명단에 포함된 까닭이다.
김성배는 자신감에 넘쳐 있다. 친정팀과 상대해서 그런지 모른다. 올 시즌 김성배는 두산전에 10번 등판해 승패 없이 평균자책 1.23을 기록했다.
“두산 타자들을 많이 안다고 자부해요. 어느 타자는 무슨 공에 약하고 강한지부터, 선수들의 성격이 어떤지도 잘 알고 있어요. 상황에 따라 두산 타자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다른 동료 투수들보다 잘 안다는 뜻이죠.”
동기부여도 확실하다. 그는 두산 팬들 앞에서 멋지게 던지고 싶다.
“두산이 절 버린 걸 후회하게끔 만들려는 게 아니에요. 그저 제가 열심히 던지는 장면을 두산팬들께 보여 드리고 싶어요. 그것이 절 성원해주시고, 안타깝게 봐주셨던 분들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 싶어요. 지켜보세요. 정말 ‘팔이 빠져라’ 죽기 살기로 열심히 던질 테니까요(웃음).”
김성배는 사랑하는 여성이 있다. 방황하던 그를 기다려준 여성이다.
“포스트 시즌이 끝나면 결혼할 생각이에요.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해 지금껏 기다려준 여자친구에게 고마움을 나타내고 싶어요. 그러려면 더 열심히 던져야 합니다.”
10월 8일 김성배는 ‘아빠’로 불렀던 이를 ‘적장’으로 만나야 한다. 감회가 남다를 법하다.
“정규 시즌이 끝나고 김진욱 감독님이 보내신 문자 메시지를 받았어요. 보니까 ‘성배야 올 시즌 잘 던졌다. 수고했다’라고 적혀 있었어요. 기분이 좀 묘했어요. 그때 알았죠. 감독님이 날 버린 게 아니라 기회를 준 것일 수 있다고요.”
야구는 홈에서 출발해 홈으로 돌아오는 경기다. 야구계도 같다. 돌고 돈다. 어제의 ‘아빠’가 오늘의 ‘적장’이 되고, 내일의 ‘은인’이 된다.
김성배는 안다. 포스트 시즌에서 최선을 다해 던지는 게 아들의 할 일이라고. 그것이 은퇴를 막았던 아빠에 대한 답례라는 것을.
마운드 위에 선 김성배와 그를 지켜보는 김진욱 모두에게 행운이 깃들길 바란다. 승패와 관계없이 두 이는 이미 가을의 주인공이다..(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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