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8일 금요일

4강 공식, 가을 DNA는 정말 따로 있는가




[오마이뉴스 이준목 기자]

'가을 잔치 진출팀은 이미 정해져 있다?'

올해 4강에 오르지 못한 팀에게는 서운할 지 모르지만, 사실 틀린 이야기도 아니다. PS대진표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결과적으로 4강 진출을 둘러싼 '될 팀은 되고' '안될 팀은 안되는' 공식이 올해도 유효했기 때문이다.

올시즌 초반 프로야구는 그 어느 때보다 전력 평준화가 두드러진 것으로 평가됐다. 강력한 우승후보로 평가받았던 삼성-KIA의 초반 부진과 약체였던 넥센-LG의 약진으로 순위권 판도가 요동친 영향이 컸다.

2008년부터 시작된 4강 공식, DTD는 진리?

그러나 이는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했다. 후반기로 들어오면서 삼성이 서서히 뒷심을 발휘하며 선두로 복귀했고, 넥센과 LG는 뒷심 부족을 드러내며 4강 경쟁에서 밀려나 결국 '제자리'를 찾았다.

올해 4강 진출이 확정적인 삼성-롯데-SK는 지난해도 포스트시즌에 올랐던 팀들이다. 유일하게 지난해 4강 팀 중 KIA만 두산과 자리를 맞바꿨을 뿐 LG-넥센-한화는 올해도 변함없이 PS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는 것도 몇 년째 되풀이되고 있는 리그 판도의 공통점이다.

이러한 공식이 본격적으로 굳어진 것은 2008시즌부터다. 현대를 인수한 히어로즈가 처음으로 프로야구에 데뷔했고, 한화 이글스가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로 암흑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해다. 2002년부터 꾸준히 하위권에서 '개근'하고 있는 LG 트윈스를 포함하여 '3약'의 동반 PS탈락이 처음으로 이루어진 해다. 2000년대 초중반 프로야구 꼴찌를 돌아가며 차지했던 '엘롯기'(LG-롯데-KIA)의 계보를 잇는 NHL(LG-한화-넥센) 루저 동맹의 탄생을 알린 기념비적인 한해였다.

세 팀은 2008시즌부터 올해까지 5년째 꾸준히 4강 탈락의 아픔을 공유해오고 있다. DTD(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징크스의 원조인 LG가 프로야구 최장기간인 10년 연속이고, 넥센이 전신인 현대 시절을 포함한 6년 연속, 한화가 5년 연속째다.

4강 탈락 고정인 세 팀을 제외하면 남은 한 자리는 매년 바뀐다는 것도 재미있는 징크스다. 2008년 KIA→2009년 삼성→2010년 KIA→2011년 두산→2012년 KIA 순으로 4강 탈락팀이 바뀌었다. KIA는 2008년 이후로 한해 걸러(2009년 우승, 2011년 4강)과 PS 진출과 탈락을 반복하는 '짝수해 징크스'로 4강 판도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내고 있다.

4강,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

이처럼 하위권 팀들의 운명이 고정되어있다는 것은, 그만큼 상위권 팀들 역시 '가을 잔치에 나가는 팀만 계속 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디펜딩챔피언 삼성은 1996년 이후 최근 15시즌간 PS 시즌에 나가보지 못한 것은 2009년 단 한 번뿐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에만 무려 5번의 페넌트레이스 우승과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며 21세기 프로야구 최강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 한때 7년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과 4년 연속 꼴찌로 암흑기를 보냈던 롯데는 '4강 공식'이 처음 형성된 2008시즌부터 올해까지 무려 5년 연속 PS진출에 성공하며 구단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가고 있다. 구도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90년대까지만 해도 3년 이상 연속으로 PS에 진출할 경우가 한 번도 없을 만큼 꾸준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롯데이기에 더욱 고무적인 성과다.

다만 1992년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8개 구단 중 가장 오래된 20년째 무관에 그치고 있다는 점은 최근 꾸준한 4강 진출에도 아쉬운 대목이다. 롯데는 2000년부터 역대 포스트시즌 시리즈 대결에서 5연패를 당하고 있다.

SK 역시 김성근 전 감독이 처음 지휘봉을 잡았던 2007년부터 꾸준히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고 있으며 특히 지난해까지 전성기 해태도 이루지 못했던 한국시리즈 5년 연속 진출(우승 3회)의 대기록을 세웠다. 대행 꼬리표를 떼고 이만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올 시즌도 2위로 PO직행이 유력한 상황이다.

두산도 2000년대 PS 단골손님이다. 2000시즌 이후 두산은 최근 12년 간 8차례나 4강 진출에 성공했고, 한국시리즈에도 SK(6회) 다음으로 많은 5회(우승 1회)나 올랐다. 지난해 성적 부진으로 김경문 감독이 물러난 직후, 절치부심한 두산은 2년만에 다시 가을 잔치 무대 복귀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양극화 구도,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처럼 4강을 둘러싸고 올라가는 팀과 떨어지는 팀이 고착화되는 양극화 구도는 리그 흥행면에서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나마 올 시즌 중하위권 팀들과 상위권 팀간 전력차가 많이 줄어든 모습을 보이며 2013시즌의 희망을 살렸다는 점은 눈여겨 볼 만하다.

KIA는 올시즌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무너졌지만, 기본 전력은 여전히 탄탄한 팀이다. 특히 장기레이스에서 가장 중요한 선발진이 리그 정상급이다. 기존의 에이스 윤석민이 내년 이후 FA를 앞둔 가운데 시즌 후반기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로 거듭난 서재응과 김진우의 약진은 큰 힘이 되고 있다. 하지만 올시즌 나란히 실망감을 안긴 최희섭-이범호-김상현의 중심타선은 대체자원이 절실하고, 선발에 비하여 취약한 불펜에도 믿을 만한 필승조를 구축하는 문제가 시급하다.

올시즌 중 나란히 감독경질이라는 강수를 선택한 넥센과 한화는 전력 불균형 문제를 해소해해야 한다. 넥센은 나이트가 다승·방어율 수위를 달리고 있으며, 박병호는 홈런·타점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한화도 김태균이 타격 수위를 달리고 있으며 류현진은 7년 연속 10승과 탈삼진왕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개인타이틀을 휩쓸고 있는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팀은 4강에 가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전체적인 기본 전력이 취약하다는 것을 반영한다. 당장 새로운 감독이 필요한 구단 측에서 얼마나 능력 있는 감독을 선임하고 리빌딩에 힘을 실어줄지도 미지수다. 내년의 성적보다 구단 측이 얼마나 장기적인 비전과 추진력을 가지고 있는지가 의문이다.

LG는 8개 구단 중 가장 오래된 10년 연속 PS탈락의 악몽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주축 선수들의 이적과 승부조작 파문 등 굵직한 악재 속에서도 어느 정도 선방했고, 젊은 선수들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봉중근의 마무리 전환으로 내년에는 약점이던 뒷심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DTD의 원조답게, 기본적으로 성적을 내지 못한 지 오래되면서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의 위기관리능력과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게 최대 약점이다. 주키치와 리즈를 제외하면 장기레이스에 믿을 만한 토종선발이 부족하다는 게 내년 시즌을 대비하여 해결해야 할 큰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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