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아버지' 손웅정 아시아축구아카데미(前 춘천 유소년FC) 총감독. / 김용일 기자 |
[스포츠서울닷컴ㅣ춘천 = 김용일 기자]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50). 이 남자의 삶은 매우 이채로운 궤적을 그리고 있다. 1985년 상무 소속으로 K리그 7경기를 치른 뒤 현대(현 울산)와 일화(현 성남)를 거쳐 K리그 통산 37경기에서 7골을 넣었다. 167cm 단신이지만 발재간이 좋았고, 1987년엔 태극마크도 달았다. 그러나 불의의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28살의 이른 나이에 현역에서 물러났다.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가족을 부양할 정도로 힘겨운 삶을 살았다.
이후 한국 축구의 '슈퍼 탤런트' 손흥민(함부르크)을 길러 낸 아버지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웅정의 삶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격렬하고 뜨겁다. 손흥민 외에도 7명의 유소년 선수들을 유럽에 진출시켰다. 창의적인 지도 방식은 유럽 굴지의 클럽 관계자들이 찾아와 관심을 보였다. 분데스리가 2부 리그 모 구단은 유소년 팀 감독까지 제의했다. 그러나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한국 유소년을 지도하는 춘천 공지천이라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제자를 향한 진정성 있는 손웅정의 철학은 언론의 주 관심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인공은 내가 아닌 제자들"이라고 말하며 언론과 담을 쌓고 살았다. 스스로 축구계 야인 또는 스라소니라고 한다. 최근 손웅정의 춘천 유소년FC는 분데스리가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아시아축구아카데미(이사장 황승용)라는 거대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공지천에 뿌린 작은 씨앗이 시나브로 큰 열매를 맺은 것이다.
그는 아시아축구아카데미의 총감독을 맡아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특히 소속 선수들에겐 단 한 푼의 회비를 받지 않는다. 어린 시절 가난함속에서 '헝그리 축구'를 강요받은 그가 제자들만큼은 '개천에서 용 났다' 소리를 듣게 해주고 싶단다. 돈과 명예가 아닌 이 시대의 '지도자'로 남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언론과 접촉을 더욱 꺼렸다. 자칫 진정성 없는 지도자로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포츠서울닷컴>을 통해 처음으로 마음 한쪽에 자리한 속내를 털어놨다. 아시아축구아카데미 기공식이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17일 춘천 한 호텔에서 만난 손 감독. 대중의 오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꺼냈다.
손흥민의 아버지로 손웅정(오른쪽) 감독은 축구계 야인의 길을 걷고 있는 지도자다. |
◆ "아들 국가대표 차출 거부 논란, 과정 쏙 빠진 오보"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다. 춘천FC 시절부터 감독님의 철학에 관해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아시아축구아카데미 기공을 축하하며 한국판 축구사관학교가 되길 바란다.
감사하다. 이제 시작이다.(웃음) 꾸준히 관심 가져주신 만큼 잘 부탁드린다.
- 유럽뿐 아니라 국내 팬들도 손흥민, 김병연(오스트리아 KSV1919)을 길러 낸 손 감독의 지도 철학에 대해 궁금해 한다. 그동안 언론과 꽤 거리를 뒀는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지금도 조심스럽다. 하지만 기자께서 공지천에 자주 오셔서 저희 훈련을 보셨으니 아시리라 생각한다. 진정성을 느껴주셨을 것으로 믿는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속 시원하게 얘기하고 싶다. 인터뷰 꺼린 이유요? 언론이 (손)흥민이 말고도 일부 선수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근거 없는 보도를 한 것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조광래 감독께서 국가대표팀에 계실 때 제가 아들 차출을 거부했다고 파문이 났었다. 당시 공항에서 아들이 당황하는 사진을 곁들여 보도했다. 그 속엔 '과정'이란 게 있다. 그걸 쏙 뺐다. 흥민이가 당황하는 사진은 그 내용과 전혀 관계없는 것인데 마치 아버지 때문에 당황한 것처럼 묘사됐다. 섭섭했다. 더는 협조하고 싶지 않았다.
- 당시 상황은 어떻게 된 건가?
전 목표가 분명한 사람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는 성향이 아니다. 하지만 논란이 커졌던 이유는 공항에 오지 않은 기자 분이 마치 제 얘기를 직접 들은 것 마냥 기사를 썼다. 말이 안 되잖나? 당시 공항에 가기 전에 일부 언론을 통해 "흥민이는 대표팀에 들어갈 수준과 경험이 아직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박태하 코치가 전화로 "형님, 그런 말씀하시면 일하기 어려워진다. 이해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말을 안 했다. 그런데 결국 흥민이가 대표팀에 뽑혀 아시안컵을 다녀왔다. (안 뛰어서) 체중이 4kg 늘어서 왔다. 속이 상했다. 분데스리가 시즌 전체에 맞춰 몸을 올렸었는데…. 이후 부진했다.
- 손흥민 선수가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를 경험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도 했다.
아시안컵에 출전하는 국가대표팀의 벤치 자원도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실질적인 전력감이 앉아야 해요. 당시 흥민이는 부족했다. 혹자는 경험을 말씀하시는데, 꾸준히 교체 투입돼 20~30분 정도 뛰었을 때 경험이 되는 거다. 무조건 다 '경험'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파 공항에서 박 코치에게 얘기한 것인데 언론은 과정을 무시한 채 제가 급작스럽게 도를 넘은 행동을 한 것처럼 묘사했다. 박 코치와 이미 교감을 나눈 상태라서 말을 한 것인데. 제발 근거 없는 얘기로 선수, 가족이 난처한 처지에 서지 않게 해주셨으면 한다.
- 당시 태극마크의 가치를 깎아내렸다고 비난하는 분들도 있었다.
맞다. 국가대표를 무시하느냐, 유소년의 꿈을 꺾느냐는 말을 들었다. 제가 국가대표를 무시했다면 흥민이가 들어갈 수준이 아니라고 말을 했겠나? 전 그 기사를 쓴 분을 만나고 싶다. 국가대표를 높게 얘기한 것이다. 지금도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간을 생략하지 말고, 제 의지와 다르게 해석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 전 지금도 흥민이가 대표팀에 가면 늘 '겸손'을 강조한다. 언론에서 한국 축구의 '대들보'라고 묘사해도 말로만 대들보가 되면 안 된다. 늘 태극마크의 자부심을 품고 겸손하고 충실하게 생활하라. 그래야 너도 국가대표팀도 힘을 받는다고.
'강한 남자' 손웅정 감독도 아들을 둘러싼 대중의 오해에서 심적 고통이 있었지만, 더욱 성숙해질 수 있는 디딤돌이 됐다고 한다. |
◆ "흥민이, 동료 선수에 발차기? '잘했다'고 했다"
- 손흥민이 피스컵을 치르기 전 팀 동료 라이코비치가 말썽을 일으켜 다퉜는데.
제가 독일에 있을 때 라이코비치가 여러 번 말썽을 일으키는 모습을 봤다. 경기 때 불필요하게 과격한 반칙으로 퇴장당해 4~5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 얀센, 페트리치 등 동료와 싸운 적도 있다. 이번에 문제가 발생한 날 제가 새벽 2시까지 잠을 못 자다가 흥민이와 통화를 했다. "널 변호하려 하지 말고 냉정하게 상황을 얘기해 달라"고요. 그런데 언론에 나왔듯이 라이코비치의 행동이 문제였고, 흥민이가 발로 때렸죠. 전 "라이코비치에게 맞은 톨가이가 빨리 회복됐으면 한다. 흥민이 넌 그 상황이었다면 잘했다. 만약 구단에서 벌금을 내라고 한다면 내가 빚을 내서라도 내준다. 기죽지 마라"고요.
- 유럽에선 흔히 있는 일이고, 동양인 선수에 대해 약간 얕보는 면도 있죠.
맞다. 그래서 전 어느 상황이든 네 존재감을 보이라고 한다. 유럽에선 선수들끼리 경쟁심이 엄청나게 강하다. 심지어 같은 팀끼리 경기하다가 치고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흥민이처럼 동양에서 온 선수를 무시하려고 드는 경우가 많다. 절대 그 꼴은 못 본다. 흥민이가 위축되면 그게 한국인의 이미지고 위상이 된다. 그 녀석은 제 성향을 안다. 자기가 행동했을 때 혼날 상황인지, 격려 받을 상황인지. 오히려 상대 선수에게 불합리하게 맞았으면 아버지한테 두 번 죽는다고 인식했겠죠.(웃음) (마치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발차기한 것처럼?) 맞다. 전 잘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을 무시하게 하면 안 된다.
- 손흥민이 2010년 18세 3개월 22일의 나이에 분데스리가에서 골을 넣었다. 함부르크 123년 역사상 최연소 골이었다. 갑자기 아들이 떴을 때 심정은 어땠는지.
아웃라이어란 책을 보면 '일만 시간의 법칙'이 나온다. 전 이것을 준수했다. 흥민이는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았다. 흥민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도를 했는데, 친척 집 한 번도 보낸 적이 없다. 겨울에 공지천 인조잔디가 딱딱하게 얼어 인근 학교 운동장에 넉가래를 들고 가 눈을 치우고 땅을 갈았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훈련을 했다. 더운 여름에도 흥민이는 나무 그늘에 세워놓고 전 땡볕 아래서 수 백 개의 공을 던져주면서 운동을 시켰다. 손흥민이 혜성? (고개를 저으며) 세상엔 공짜란 없다.
"밥풀이 입 근처에 있어야 어울리는 것"이라는 손웅정 감독. 그는 아들은 물론 자신이 지도하는 선수들에게 자부심과 책임감을 강조한다. |
- 한국 축구는 유난히 재능있는 선수들이 꾸준히 등장했지만, 20대 중반 이후 퇴보하는 경우가 많았다. 손흥민에게도 기대 반 우려 반의 시각이 있다. 아버지로서 걱정되는 부분은?
늘 겸손, 성실이다. 이건 죽을 때까지 입에 붙어있어야 한다. 더는 말 할 필요도 없다. 또, 이성 친구. 시즌을 마치면 언제나 춘천으로 와서 저와 운동을 한다. 그런데 지난 시즌을 마친 뒤 흥민이가 4일 정도 서울에서 쉬게 해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좋다. 대신 여자들과 어울린다는 소리가 내 귀에 들어오면 너랑 나랑 끝이다'고 말했다.(웃음)
- 어떻게 보면 21살의 나이에 가혹하다는 생각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주변에서 운동도 좋지만 '한창 놀 때'라는 말씀을 하더라. 전 바로 반박했다. 그건 사치다. 돈이 없어서 술을 못 마시지, 술집이 없어서 못 마시느냐고. 운동선수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졌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그만한 혜택을 누린다면 포기해야 하는 가치도 생각해야한다. 은퇴하고 30대 중반 넘어서도 세계 일주 다 할 수 있고, 마음껏 놀 수 있다. 남들은 저를 미친 사람 취급할 수 있겠지만, 운동선수로서 목표가 있다면 노는 건 사치다.
- '호랑이 아버지'도 아들이 분데스리가 데뷔 골을 넣었을 땐 칭찬했죠?
당시 독일에 있었다. 사실 흥민이가 유소년 숙소에 있었을 때 원정 다녀오면 불 꺼진 방에 들어가는 게 싫다고 말을 했다. 그래서 제가 숙소에 들어가서 원래 밥을 못 해먹게 돼 있는데 밥솥을 몰래 감춰놓고 흥민이 밥까지 해줬다. 맛은 없었겠죠.(웃음) 골을 넣었을 때도 새벽 2시까지 안자고 기다리고 있었다. 흥민이가 들어왔을 때 안아줬다. 그러면서 '잘했다. 이젠 과거야. 지난 건 빨리 잊어라'하고 노트북을 뺏어 제가 묶는 호텔로 갔다.
- 트윗하기 좋아하는 손흥민인데, 골을 넣었을 땐 한 번 봐주지 그러셨어요.
트위터뿐 아니라 전부 금지했다. 골 넣었다고 도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그게 다 이룬 게 아니잖나? 이제 시작이라고 암시해주고 싶었다.(웃음) < 27일 금요일 2편에선 손웅정의 지도 철학과 선수 시절 이야기, 미래의 꿈이 이어집니다>
스포츠서울닷컴 스포츠기획취재팀 kyi0486@medi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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