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8일 화요일

지옥에서 천당으로, 호날두는 슬프지 않다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시티의 빅뱅은 기대대로 명승부를 낳았다. 그 결말은 호날두의 몫이었다 (사진=연합뉴스)

[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이것이야말로 챔피언스리그의 품격이라고 말 할 수 있는 명승부였다. 통산 10번째 유럽 정복을 목표로 올 여름에도 어김 없이 스쿼드의 수준을 올린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 그리고 축구계의 가장 빛나는 별들을 자신들의 홈 구장 위에서 빛나게 하겠다는 기세로 스타들을 긁어 모으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 조금은 일찍 만난 둘의 맞대결은 조추첨이 끝나자마자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별들의 전쟁’이라는 UEFA 챔피언스리그의 모토에 가장 어울리는 대결로 평가 받은 레알과 맨시티의 32강 조별리그 첫 경기는 기대대로였다. 시즌 초반에 겪고 있는 의외의 부진과 팀 내분설을 종결 짓기 위해 특별한 승리가 필요했던 레알. 지난 시즌 겪었던 조별리그 탈락의 실패를 되풀이지 하지 않고자 하는 맨시티. 현재 유럽 축구를 이끌고 있는 프리메라리가와 프리미어리그를 정복한 두 디펜딩 챔피언은 19일 새벽(한국시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D조 1차전에서 막판 20분 동안 다섯 골을 주고 받는 공방전으로 보는 이들의 심장박동을 배가시켰다. 그리고 이 환상적인 경기의 중심에는, 슬픔 논란으로 이적설에 휩싸였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있었다.







원정에서 강력한 수비와 빠른 역습으로 승리를 목전에 뒀던 맨시티 (사진=연합뉴스)

▲ 잠자던 사자를 깨운 맨시티의 도전
챔피언스리그 32강전의 출발을 알릴 빅뱅을 앞두고 모든 이들은 레알의 불안함을 주목했다. 레알은 지난 주말 열린 세비야 원정에서 0-1로 패했다. 초반 리그 4경기에서 1승 1무 2패. 지난해 리그 우승 당시 보여준 압도적인 공격력은 물론, 주제 무리뉴 축구의 상징과 같은 단단한 수비도 실종됐다. 시즌 개막전이었던 수페르코파에서 극적으로 바르셀로나를 물리치고 우승을 거둔 것이 오히려 초반에 집중력을 흔든 꼴이 되고야 말았다.


부진 탈출에는 계기가 필요했다. 레알에겐 맨시티와의 챔피언스리그가 좋은 기회였다. 현 시점에서 누구보다 강한 도전자 중 하나였고, 홈 경기임에도 모두가 레알의 승리를 의심할 정도였다. 리그에서 2승 2무를 기록 중이지만 세르히오 아구에로를 비롯한 몇몇 주전들의 부상과 첼시, 아스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여전한 견제를 받고 있는 맨시티도 분위기를 끌어올려 줄 결과가 필요했다.


맨시티의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은 예상대로 신중하고 수비에 보다 밸런스를 맞춘 전략을 들고나왔다. 포백은 단단히 하고 세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중원에 배치해 레알의 폭풍 같은 공격에 대비했다. 테베스, 실바, 나스리 세명의 개인 전술에 의한 역습으로 무승부 이상의 결과를 가져오겠다는 의도가 명백했다. 반면 레알은 홈팀답게 정공법을 택했다. 폭풍 같은 공격으로 시즌 초반 부진에 실망한 홈팬들의 마음을 뺏겠다는 각오였다. 호날두, 이과인, 디마리아는 물론 풀백 마르셀로까지 적극적으로 슈팅을 날리며 맨시티의 조 하트 골키퍼를 전반 내내 숨가쁘게 만들었다.


후반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레알의 세찬 공격이 계속됐지만 맨시티의 골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변화는 맨시티가 먼저 감행했다. 후반 18분, 만치니 감독은 실바를 빼고 에딘 제코를 투입하며 전방에 더 힘을 실었다. 그로부터 6분 뒤 선제골이 맨시티로부터 나왔다. 역습 상황에서 야야 투레가 과감하게 치고 올라왔고 제코를 향한 침착한 패스로 기회를 만들어줬다. 제코는 카시야스가 지키는 골문 안으로 낮게 깔리는 슈팅을 넣으며 기선을 제압했다. 만치니 감독의 노림수가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맨시티의 선제 타격 후 무리뉴 감독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이미 아껴두었던 외질을 투입했던 그는 실점 후엔 벤제마와 모드리치까지 동시에 투입했다. 반면에 만치니 감독의 선택은 마이콘 대신 사발레타를 투입함으로써 수비를 보다 안정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레알은 후반 31분 결국 맨시티의 철벽을 무너트리는 데 성공했다. 마르셀로가 왼쪽 측면에서 페널티 박스 정면으로 침투하며 감아 찬 오른발 슈팅이 골키퍼가 손 쓸 수 없는 골문 구석에 정확히 꽂히며 동점골로 이어졌다.


맨시티는 후반 41분 콜라로프가 오른쪽 측면에서 때린 먼 거리에서의 왼발 프리킥이 행운의 골로 이어지며 다시 앞서갔다. 수비에 가담하며 몸을 날린 사비 알론소는 공을 걷어내지 못한 채 오히려 카시야스 골키퍼의 시야만 방해했고 콜라로프의 프리킥은 골문 구석으로 들어갔다. 남은 시간은 5분여. 콜라로프의 골은 레알의 패배와 깊은 부진을 만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맨시티의 도전이 오히려 잠자던 사자의 의지와 집중력을 깨우는 꼴이 됐다. 레알은 홈에서 어떻게든 상황을 뒤바꾸기 위해 앞만 보고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맨시티는 그런 레알을 저지하기엔 아직 경험이 부족했다. 그 차이는 막판 5분에 레알을 위한 드라마로 이어졌다.







3주 가까이 팀이 불화설에 시달리게 만든 발단이었던 호날두는 스스로 매듭을 지었다 (사진=연합뉴스)

▲ 호날두, 슬픔이여 이제 안녕
1-2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레알을 주도한 것은 무리뉴 감독이 감행한 잇단 공격 카드였다. 패색이 짙었지만 레알은 공격라인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맨시티를 압박했다. 결국 콜라로프에게 실점한 지 2분 만에 다시 상황을 원점으로 만들었다. 디 마리아의 패스를 받은 벤제마는 골문을 향해 돌아서자마자 지체 없이 오른발 슛을 날렸다. 상대 수비의 견제가 들어오기 전 오로지 감각에 의지해 날린 슛은 맨시티의 골문 구석으로 깔려 날아갔고 동점골로 이어졌다.


순식간에 분위기를 자신들에게로 가져 온 레알의 극적인 마무리는 최근 팀을 흔들었던 내분설의 당사자들이 책임졌다. 바로 레알의 에이스인 호날두였다. 사실 호날두는 최근 팀 부진의 시발점이었다. 그는 그라나다와의 리그 3라운드에서 2골을 넣으며 3-0 승리를 이끌었지만 골 세리머니를 하지 않은 채 “슬프다”라는 말로 모두를 의아하게 했다. 이후 언론으로부터 호날두를 둘러싼 팀 내분설이 대두됐다. 무리뉴 감독이 아무리 항변을 했지만 A매치 휴식기가 끝난 뒤 재개된 리그 경기에서도 패하자 라커룸 내의 불화는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결과 밖에 답이 없었다. 답을 내지 못한다면 자멸 밖에 길이 없었다.


내분설의 중심에 있는 호날두는 이날 가장 큰 의지를 보였다. 이날 경기에서 호날두가 날린 슈팅은 총 10개. 팀 전체가 기록한 슈팅의 1/3이었다. 그를 비판하는 이들이 일컫는 난사 성향이 짙었지만 그는 10개의 슈팅 중 7개를 유효슈팅을 연결했다. 무엇보다 그의 수 많은 슈팅 중 단 하나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골로 터진 것이 의미 있었다. 후반 45분이 지나며 전광판 시계가 멈춘 그 순간, 왼쪽 측면에서 페널티 박스 안으로 치고 들어 온 호날두는 사발레타를 제치며 오른발 발등으로 강한 슛을 날렸다. 공은 맨시티의 조 하트 골키퍼를 향해 날아가다 갑자기 뚝 떨어지는 드롭성 슈팅으로 이어지며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호날두의 골은 그 전후 장면에서 레알이 지난 3주 간 겪었던 심각한 내흥을 한번에 날렸다. 호날두에게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은 다름 아닌 그와의 불화에 직접적으로 관련됐던 부주장 마르셀로였다. 마르셀로는 골이 터지자 가장 먼저 호날두에게 달려와 같이 환호했다. 호날두 자신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 팀을 위기에서 구하는 골을 터트렸고 예전처럼 모든 동료들은 그에게로 달려갔다. 가장 노심초사했던 무리뉴 감독은 선수 이상의 격정적인 세리머니를 보였다. 그렇게 레알은 한 순간에 모든 불화를 날리고 하나로 응집됐다.


결승골의 감격 이후 그라운드에 누운 채 동료들과 8만여 홈 팬들의 축하를 받은 호날두는 다시 미소 지었다. 그는 더 이상 슬픈 선수가 아니었다. 3주 가까이 지옥에서 머물러야 했던 레알과 호날두가 천당으로 가는 데는 단 한골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기나긴 불화의 스토리를 극적으로 봉합하는 해피엔딩으로 손색이 없었다.





다시 뭉친 레알, 지옥과 천당은 불과 한골 차였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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