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7일 월요일

넥센 "혁신을 주도할 역동적인 지도자를 원한다."








넥센 김시진 감독(사진=넥센)


태풍이 불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감독이 떠났다.


9월 17일 넥센 히어로즈는 보도자료를 통해 ‘2009시즌부터 지휘봉을 잡았던 김시진 감독에 계약해지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넥센은 이와 함께 ‘김시진 감독이 도중 하차한 자리에 김성갑 수석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임명하고 2012시즌 잔여경기를 치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김 감독의 전격 해임을 두고 야구계는 충격에 빠졌다. ‘형님 리더십’으로 4년간 넥센을 이끌던 김 감독의 경질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까닭이다. 일부 야구인이 “한화 한대화 전 감독이 경질됐을 때보다 더 놀랐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스포츠춘추>가 김 감독 경질과 둘러싼 일련의 의문을 짚어봤다.


1. 넥센의 경질은 우발적이었나


17일 오후 2시 김 감독과 넥센 이장석 대표가 서울 시내 모 호텔에서 만났다. 이날 넥센은 휴식일이었다. 이 대표는 김 감독과 만난 자리에서 계약해지를 통보하며 4년 동안 팀을 이끌어줘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김 감독은 이 대표의 통보를 말없이 듣다가 “알았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감독의 경질은 갑작스럽게 진행됐지만, 구단주와 사장을 겸하는 이 대표가 직접 김 감독을 만나 계약해지를 통보했다는 건 경질이 우발적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넥센의 고위 관계자도 “후반기 들어 팀 성적이 계속 하락하자 이 대표가 팀의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며 “‘팀 칼라를 전체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내년 시즌에도 성적을 내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최소 한 달 이상 고민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대표가 전화나 아랫사람을 시켜 김 감독에게 경질을 통보하지 않고, 호텔에서 직접 김 감독을 만나 구단 의지를 전달한 건 고생한 감독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였다”며 “김 감독과 만난 자리에서도 구단 결정이 ‘심사숙고한 결과’임을 설명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넥센 내부에선 구단 수뇌부가 이미 8월 중순부터 “팀이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우려를 김 감독에게 전달했다는 소리가 돈다. 김 감독도 이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팀 성적은 나아질 줄 몰랐고, 김 감독의 어깨는 계속 움츠러들었다. 모 코치는 “9월 초 감독님의 안색이 하도 좋지 않아 ‘무슨 일 있으십니까’하고 물었더니 ‘그냥 힘드네’하시면서 허공만 바라보셨다”며 “팀이 부진할 때도 감독님은 전혀 내색하는 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2. 왜 하필 시즌 중 경질 카드를 들었나


9월 17일 기준 넥센은 118경기를 치렀다. 15경기만 치르면 시즌을 종료한다. 야구계는 “얼마 있으면 시즌이 종료하는데 어째서 넥센이 시즌 중 경질 카드를 빼들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일부에선 “넥센도 시즌 중 경질이 몰고 올 엄청난 파장을 한화의 전례를 통해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쏟아지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김 감독을 시즌 중 경질한 이유가 궁금하다”고 의문을 나타낸다.


그러나 넥센 측은 “오히려 시즌 종료 후, 감독 경질을 발표하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넥센 관계자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 대표도 ‘시즌 종료 후, 감독 경질 발표’를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러나 기존 감독이 뻔히 있는 가운데 새 감독 후보군을 고르는 건 더 무례한 행동이라 판단한 것 같다. 실제로 실무진에게 ‘그간 고생한 감독의 뒤통수만은 때려선 안 된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욕을 먹더라도 차라리 감독을 교체할 거라면 기존 감독이 없는 가운데 새로운 감독을 물색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 감독 해임 발표 때도 ‘자진사퇴’라는 편법을 쓰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경질이면 경질이지, 있지도 않은 자진사퇴로 자충수를 둘 필요는 없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었다.”


대개 구단은 ‘시즌 중 경질 카드’를 잘 선택하지 않는다. 새 감독 선임 때까지 잡음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신 감독 경질 이후 곧바로 후임 감독을 발표해 잡음과 파장을 최대한 줄인다. 실제로 기존 감독 경질에 쏠린 논란은 새 감독이 발표되면 잠잠해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넥센이 김 감독을 시즌 중 전격 경질한 건 두 가지 이유로 보인다. 먼저 구단의 대폭적인 물갈이와 팀 칼라 변화를 최대한 빨리 실행해 내년 시즌 상위권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올 초부터 “2012년까지 구단 재정을 안정화시키고, 2013년엔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넥센 관계자는 “이 대표의 계획대로 내년 시즌 팀이 상위권 진출을 노리려면 최대한 빨리 새로운 코칭스태프를 꾸려 김 감독의 공백을 메우고, 내년 시즌을 준비해야 한다”며 “이 대표는 시즌 후 감독 경질 발표 시 그 파장과 영향이 다음 시즌까지 이어질 것으로 판단해 아예 시즌 중 경질을 선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넥센 특유의 빠른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넥센을 제외한 나머지 구단은 모그룹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감독 선임 및 해임의 최종 결정권도 모그룹 최고위층이 쥐고 있다. 따라서 구단에서 모그룹까지 결재가 진행되는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당연히 변수도 많다. 구단에서 ‘OK’한 사안이 모그룹 최고위층에서 ‘NO’하면 순식간에 ‘없었던 일’이 될 때도 잦다. 여기다 구단은 모그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혹여 구단의 결정이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올 때 모그룹까지 불똥이 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단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그룹과 사전 조율과정을 거치곤 한다.


반면 넥센은 이 대표가 구단 사장이자 구단주다. 이 대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면 그만이다. 모그룹이 없기에 눈치 볼 곳도 없다. 의사결정이 빠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번 김 감독 경질도 이 대표가 마음을 굳히자마자 전격 발표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의사결정에 ‘브레이크’없다는 건 사고의 일방통행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만큼 판단 미스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3. 김 감독은 왜 경질됐나


야구계는 김 감독 경질의 주요 배경으로 ‘성적부진’을 꼽고 있다. 넥센도 같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넥센 관계자는 “지난해 시즌 전 김 감독의 계약기간이 1년 남아있음에도 일찍 3년 계약을 선택한 구단 입장에서 감독 해임은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운을 떼고서 “그러나 올 시즌 전반기에 승차없이 3위를 달리던 팀이 후반기 들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추락한 건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택근, 박병호, 강정호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의 완성, 서건창의 등장과 나이트, 밴헤켄 두 선수가 팀의 1, 2선발 자리를 확고히 하며 충분히 상위권에 도전할 수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성적은 과거 시즌과 다르지 않았다”며 경질 배경이 '성적 부진'임을 확실히 했다.

전반기 넥센의 순위는 3위였다. 41승 2무 36패로, 2위 롯데와는 승차가 없었다. 되레 전반기를 2연패로 마감한 롯데보다 2연승으로 끝낸 넥센 분위기가 좋았다. 1위 삼성과도 4경기 차라, 넥센은 ‘언제든 1위 도약도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후반기에 들며 넥센은 끝없이 추락했다. 7월 25일 광주 KIA전을 시작으로 29일 목동 삼성전까지 5연패 수렁에 빠졌다. 31일 문학 SK전에서 승리하며 연패 사슬은 끊었으나, 8월 1일부터 3일까지 다시 3연패했고, 4, 5일 목동 LG전에서 강윤구, 브랜든 나이트의 호투로 2연승했지만, 또 다시 4연패했다. 9월까지 연패를 거듭하며 넥센 승률은 4할6푼6리까지 ‘뚝’ 떨어졌다.


물론 김 감독이라고 할 말은 없는 건 아니다. 넥센은 늘 ‘선수층이 얇다’ ‘선수 대부분이 풀타임 경험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후반기 부진 역시 주축선수들이 잇따라 부상으로 이탈한 탓이 컸다.


넥센은 8월에만 20명의 선수가 현역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이택근, 박성훈, 문성현, 앤디 벤 헤켄, 이보근, 김상수 등 전반기 팀의 주축이었던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으로 최소 10일간 1군 무대를 떠났다. 이정훈, 조중근, 김병현도 역시 2군으로 내려가야 했다. 상위 4개팀보다 부상자가 속출한 게 사실이다. ‘백업선수만 좋았다면…’하고 아쉬워했던 김 감독의 한숨이 충분히 이해될만 했다.


하지만, 구단의 생각은 달랐던 듯싶다. 넥센은 “코칭스태프가 ‘선수층이 얇다’고 하소연하기 전, 부상자를 대비해 사전에 대체 선수들을 준비했다면 사정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견해다.


구단의 한 관계자는 “1군 코칭스태프가 늘 쓰던 베테랑 선수만 기용한 채 유망주와 2군에서 가능성을 보인 선수들은 외면한 감이 있다”며 “넥센 2군이 퓨처스리그 남부리그에서 2위를 달렸음에도 1군에서 유망주 효과를 별로 보지 못한 건 매우 아쉬운 부분”이라고 밝혔다.


그는 김 감독 경질도 “후반기 성적 하락보다는 전체적인 선수단 운용을 두고 구단과 현장의 생각이 달랐던 게 주요배경이 됐을 것”이라며 “결국 구단 수뇌부가 ‘베테랑 위주의 팀 칼라를 보다 생동감 있게 바꾸려면 이를 실천할 새로운 감독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4. 넥센 차기 감독을 둘러싼 루머와 전망


넥센은 “새 감독과 관련해 아무 것도 결정된 게 없다”고 말한다. “지금부터 천천히 감독 후보들을 살펴볼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와중에 일부에선 “조범현 전 KIA 감독이 넥센 감독으로 오고, 김시진 감독이 다른 팀 감독으로 갈 것”이란 시나리오를 제기하고 있다.


넥센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반응이다. 김 감독이 갈지 모른다고 지목된 A팀도 “그런 시나리오가 있느냐”며 반문한다. 현재까진 두 구단의 입장이 과장은 아닌 것 같다.


아직 넥센은 조 전 감독에게 감독 의사를 타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작 조 전 감독을 관심 있게 보는 팀도 다른 팀이다. A팀도 사정은 비슷하다. 김 감독은 경질되기 전까지 내년 시즌 구상에 몰두했다. A팀 역시 김 감독의 경질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차기 감독을 어느 정도 내정하고 시즌 종료 후,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다.


시나리오를 확장하면 B팀도 개입된다. 언제부터인가 야구계엔 조 전 감독이 B팀 사령탑으로 갈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한술 더 떠 조 전 감독이 B팀을 맡고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누가 다시 배턴을 이어받을 것이란 이야기가 퍼졌다. 하지만, 이 역시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우선 B팀은 현 감독 경질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구단 사장부터 “그런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를 누가 썼는지 모르겠다”고 발끈한다. 모그룹에서도 현 감독에게 ‘무한 신뢰’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빠르게 변화하는 야구계에선 ‘오늘의 사실’이 ‘내일의 오보’로 둔갑되곤 한다. 하지만, 최소한 조 전 감독이 올 시즌이 끝나고 B팀에 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조 전 감독의 넥센행은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


넥센은 올 시즌 팀이 거둔 다양한 장점을 계속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팀 칼라를 구축할 능력있는 신임 사령탑을 원한다. 일단은 팀 사정을 잘 알면서도 ‘혁신’을 화두로 삼을 수 있는 젊은 지도자를 눈여겨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의 성향상 파격적인 인사가 새 감독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그렇다면 조 감독을 비롯한 베테랑 감독들은 감독 후보군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어쨌거나 넥센은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다음 시즌 성적을 낼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구단도 그걸 알아선지 조만간 본격적인 차기 감독 인선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새 타이어를 장착하고도 넥센의 주행이 지지부진하다면. 야구계는 2012년 9월 17일 넥센의 결정을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