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6일 일요일

사상 최대 빅딜, 왜 일어났나








동지가 된 커쇼와 애드곤조 ⓒ gettyimages/멀티비츠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대 규모의 트레이드가 탄생했다.


26일(한국시간) 보스턴 레드삭스와 LA 다저스는 9명을 바꾸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다저스가 보스턴에서 애드리안 곤살레스(30·1루수) 칼 크로포드(31·좌익수) 조시 베켓(32·우완) 닉 푼토(34·내야수) 4명을 데려온 대신 제임스 로니(28·1루수) 루비 데라로사(23·우완) 앨런 웹스터(22·우완) 이반 데헤수스(25·내야수) 제리 샌즈(24·좌익수/1루수) 5명을 내준 것. 9명의 트레이드 규모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1억달러짜리 선수 두 명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저스가 받기로 한 곤살레스(잔여 6년 1억2700만)와 크로포드(잔여 5년 1억250만), 베켓(잔여 2년 3150만)과 푼토(잔여 1년 150만) 네 명의 잔여 연봉 합계는 무려 2억6250만달러에 달한다. 그에 비해 다저스가 보스턴으로부터 얻어낸 연봉 보조액은 1150만달러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마감시한 이후에 일어난 이번 트레이드는 <웨이버-클레임-트레이드 협상>의 순서를 거치는 '웨이버 트레이드'의 형태로 진행됐으며, 다저스에 대해 트레이드 거부권을 가지고 있었던 크로포드는 거부권을 철회했다.


지금까지 잔여 연봉이 1억달러 이상인 선수가 트레이드된 것은 단 한 번뿐으로, 2004년 텍사스에서 뉴욕 양키스로 이동한 알렉스 로드리게스였다. 2001년 텍사스와 10년간 2억5200만달러 계약을 맺었던 에이로드는 당시 7년간 1억8300만달러의 잔여 계약을 남겨놓고 있었는데, 양키스는 알폰소 소리아노와 유망주 1명(호아킨 아리아스)을 내주는 대신 텍사스로부터 7100만달러의 연봉 보조를 얻어내 에이로드를 7년간 1억1200만달러(연평균 1600만)에 쓰는 셈이 됐다(하지만 에이로드는 4년 후 옵트아웃을 선언했다). 역대 2위 선수는 4년간 8900만달러의 잔여 계약이 남은 상태에서 2011년 토론토에서 에인절스로 트레이드된 버논 웰스로, 당시 에인절스가 토론토로부터 얻어낸 연봉 보조는 500만달러였다(3위 2002년 마이크 햄튼-잔여 계약 6년 8450만).


그렇다면 사상 최대 규모의 연봉이 오간 이번 트레이드는 어떻게 성사될 수 있었을까. 이는 양팀의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전력 보강이 필요했던 다저스
지난 5월 프로 구단 역사상 최고액(20억달러)에 거래가 성사되며 구단주 교체가 일어난 다저스는 현재 포스트시즌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 마감시한 트레이드 때 발빠르게 움직여 핸리 라미레스, 셰인 빅토리노, 조 블랜튼, 랜디 초트, 브랜든 리그 등을 데려왔지만 여전히 샌프란시스코의 뒤를 쫓고 있다.


다저스는 이미 보스턴에서 선수를 데려와 큰 재미를 본 적이 있는데, 2008년 트레이드 마감일에 데려온 매니 라미레스였다. 애리조나에 2경기가 뒤진 상황에서 라미레스를 영입했던 다저스는 라미레스의 대활약(53경기 .396 .489 .743) 속에 2경기 차 우승을 차지했다. 다저스는 포스트시즌에서도 라미레스가 MVP 4연패 시절의 배리 본즈급 활약(.520 .667 1.080)을 해준 덕분에 그 해 월드시리즈 우승 팀이 된 필라델피아와 챔피언십시리즈 5차전 승부를 치를 수 있었다. 비록 이듬해 금지약물 검사에 적발되면서 해피엔딩은 되지 못했지만, 다저스는 라미레스와 '매니 우드'를 통해 한 차례 흥행 몰이를 크게 한 바 있었다.


다저스의 가장 큰 고민은 OPS 리그 15위에 그치고 있는 1루수의 빈약한 공격력이었다. 로니에 대한 미련을 버린 다저스는 지난 겨울 프린스 필더(28) 영입전에 나서 7년간 1억6000만달러를 제시했다. 하지만 9년 2억1400만달러를 부른 디트로이트를 결국 이기지 못했다(구단주 교체가 일어난 상태였다면 다저스는 디트로이트보다 더 많은 돈을 제시했을 것이다). 현재 메이저리그는 마크 테세이라, 곤살레스, 앨버트 푸홀스, 필더, 조이 보토 등 대형 1루수들이 죄다 장기 계약에 묶임으로써 당분간 FA 시장에 나오는 대형 1루수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다저스가 보스턴에 곤살레스 트레이드를 문의하면서 판이 커지게 됐고, 다저스는 필더 대신 곤살레스(6년 1억2700만)를 선택한 셈이 됐다.


1억500만달러의 연봉 총액으로 올시즌을 시작한 다저스는, 이번 트레이드를 통해 내년 시즌 연봉이 5700만달러가 추가됐다. 또한 1000만달러 이상을 줘야 하는 선수가 올시즌 양키스보다 1명 적은 9명으로 불어나게 됐는데, 이들 9명의 내년 연봉 합계만 1억4000만달러에 달한다. 로스터 25명 중 나머지 16명을 평균 연봉(310만)의 선수들로 채운다고 하더라도 1억9000만달러를 기록함으로써, 사치세 기준인 1억7800만달러를 훌쩍 뛰어넘게 되는 것이다.


다저스 주요 선수들의 내년연봉
곤살레스 : 2100만
켐프   : 2000만
크로포드 : 2000만 (연봉 보조 1150만)
베켓   : 1575만
라미레스 : 1550만
이디어  : 1350만
테드릴리 : 1200만
빌링슬리 : 1100만
커쇼   : 1100만


그렇다면 다저스는 양키스처럼 2억달러에 육박하는 연봉을 감당해낼 여력이 있을까. 다저스가 믿고 있는 것은 지역 케이블과의 새로운 중계권 계약이다. 올시즌 <포브스>가 평가한 구단가치가 14억달러(2위, 1위 양키스 18억5000만)였으며 당초 15억달러 수준에서 거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됐던 다저스가 20억달러에 팔린 비결 역시 새로운 중계권 계약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매입 경쟁에 나섰던 인물 중 하나인 마크 큐반 댈러스 매버릭스 구단주는 다저스 장탈전을 "구단을 사는 게 아니라 중계권을 사려는 것"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통 크게 쓰고 있는 다저스의 새 구단주 그룹 ⓒ gettyimages/멀티비츠


최근 메이저리그는 지역 중계권이 폭등을 거듭하고 있는데 [관련 기사] 지난 겨울 LA 에인절스는 FOX와 17년간 25억달러(연간 1억4700만) 계약을 맺는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다. 다저스는 연간 4500만달러인 현재 계약이 2013시즌을 끝으로 종료되는 상황. 지난해 프랭크 매코트 전 구단주는 구단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FOX와 17년간 30억달러(연간 1억7650만) 계약에 합의했었는데, 사무국은 3억8500만달러를 선금으로 받는 조건을 문제삼아 승인을 거부한 바 있다.


지난해 에인절스는 316만명을 동원함으로써 1961년 창단 후 처음으로 다저스를 이겼다. 하지만 이는 매코트 구단주의 운영에 실망한 다저스의 관중이 365만명에서 293만명으로 급감했기 때문으로, 여전히 LA 지역 최고의 인기 야구 팀은 다저스다. 2010년 4월에 발표됐던 자료에 따르면 다저스의 케이블 TV 시청률은 2.15로 에인절스의 1.22보다 1.0 포인트 가까이 높다(NBA 레이커스 3.54, 클리퍼스 0.44, NHL 킹스 0.48, 덕스 0.42). [시청률 자료 보기] 이에 다저스는 지금 당장 좋은 성적을 내 흥행력을 최대한 강화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상황이다. 이번 트레이드 역시 이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순조롭게만 진행된다면 새로운 중계권 계약은 '연간 2억달러'를 가볍게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TV 중계권에서만 연간 1억5000만달러의 추가 수입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다저스 데뷔전에서 선제 결승 스리런홈런을 때려낸 곤살레스(.299 .342 .472)는 앞으로도 좋은 활약을 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멕시코 혈통을 가지고 있으며 샌디에이고에서 태어나 자란 곤살레스는 많은 수의 지역 멕시코계 팬들에게 큰 어필을 할 수 있는 선수다. 2003년 월드시리즈 MVP이며 2007년 보스턴이 우승하는 과정에서 눈부신 활약(PS 4경기 4승 1.20)을 했던 베켓(5승11패 5.23)은 올해는 도움이 안 되더라도 홀수 해인 내년을 기대해볼 수 있으며, 또 내년 시즌 후 계약이 만료된다. 결국 다저스의 이번 트레이드는 보스턴 입단 후 2년을 그냥 날린 크로포드(161경기 .260 .292 .419)의 재기 여부가 결정해줄 것으로 보인다.


남은 시즌 다저스의 예상 라인업(*좌타자 **스위치히터)
1. 셰인 빅토리노(LF) **
2. 마크 엘리스(2B)
3. 맷 켐프(CF)
4. 애드리안 곤살레스(1B) *
5. 핸리 라미레스(SS)
6. 안드레 이디어(RF) *
7. 루이스 크루스(3B)
8. A J 엘리스(C)


한편 4월부터 팔꿈치 부상에 시달려 온 크로포드는 미루고 미루다 얼마전에서야 토미존 수술을 받았는데, 토미존 수술은 투수의 경우 1년 이상의 회복 기간이 필요하지만 타자의 회복 기간은 그보다 짧은 7~9개월 정도다. 이에 크로포드는 큰 문제가 없으면 내년 5,6월에 돌아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보스턴과 계약하기 전 내심 에인절스행을 기대하기도 했던 크로포드가 탬파베이 시절(통산 .296 .337 .444)에 준하는 모습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저스의 이번 트레이드는 성공작이 될 수도 있다(물론 29-30세 시즌을 망친 선수가 32-35세 시즌을 잘하는 반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다저스가 아쉬운 것은 연봉 보조를 고작 1150만달러밖에 받지 못했으면서도 준수한 선발 유망주를 두 명이나 내줬다는 것. 토미존 수술에서 돌아온 데라로사는 지난해 평균 96.0마일의 광속구를 뿌리는 등 선발 10경기에서 3승5패 3.88을 기록하며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다. 웹스터(BA 95위)는 잭 리(BA 62위)에 이은 다저스의 랭킹 2위 유망주로, 올해 더블A 27경기(22선발)에서 6승8패 3.55를 기록한 22살의 웹스터는 곧 트리플A 입성을 앞두고 있다.







셰링턴 단장과 발렌타인 감독 ⓒ gettyimages/멀티비츠


새로운 시작이 필요했던 보스턴
보스턴의 새 단장 벤 셰링턴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전임 단장 테오 엡스타인이 곤살레스(7년 1억5400만) 크로포드(7년 1억4200만)와 장기 계약을 맺어놓고 떠났기 때문. 우승에 도전할 수밖에 없었던 셰링턴은 앤드류 베일리, 마크 멜란슨 등을 영입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트레이드는 실패로 돌아갔고, 부상선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신임 바비 발렌타인 감독과 선수들은 물과 기름처럼 갈라섰다. 연봉 3위 팀(1억7500만) 보스턴의 미래는 암울해 보였다. 하지만 보스턴은 이번 한 방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곤살레스를 떠나보냄으로 인해 보스턴의 전력은 더 약화됐다. 하지만 이번 트레이드에서 보스턴의 목표는 순전히 연봉 감축(salary dumping)이었다. 이번 트레이드를 통해 총액 2억5000만달러를 감축하게 된 보스턴은, 연봉 보조를 감안하더라도 당장 내년에만 4600만달러의 연봉을 절감하게 됐다. 여기에 계약 종료자들(케빈 유킬리스, 데이빗 오티스,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연봉까지 더하면 올해 연봉에서 1억달러가 줄어든 7500만달러로 올 스토브리그를 시작하게 된다. 셰링턴과 보스턴으로서는 밑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트레이드/계약 종료 선수들의 올시즌 연봉
곤살레스 : 2100만
크로포드 : 1950만
베켓   : 1575만
오티스  : 1457만
유킬리스 : 1225만
마쓰자카 : 1000만
젱크스  : 600만


큰 재정적 여유를 얻게 된 보스턴은(1525만달러를 받는 존 래키가 내년 최고 연봉 선수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 올 겨울에 조시 해밀턴이나 잭 그레인키 같은 FA 대어들을 영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잠시 숨고르기를 하며 공격적인 드래프트를 통한 새로운 세대 발굴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3월 발표 BA 팜 랭킹 9위). 물론 이제는 드래프트에 강제 샐러리캡이 생겨 무차별적인 지명이 어렵게 됐지만, 보스턴은 과다 계약금 사용으로 인한 사치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팀이다. 즉, 보스턴의 이번 스타트는 장기간 긴축 모드로 들어가는 '리빌딩'이 아니라 일시적인 재정비를 위한 '리스타트'인 것이다.


문제는 이번 트레이드를 통해 남은 선수들과 발렌타인 감독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느냐는 것. 곤살레스는 얼마전 '발렌타인 감독 성토 모임'에서 더스틴 페드로이아와 함께 총대를 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선수로, 발렌타인이 분위기 저해 사범으로 지목한 유킬리스도 내보낸 보스턴 프런트는 계속 발렌타인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보스턴은 얼마전 셋업맨 강등에 반발한 알프레도 아세베스에게도 3경기짜리 자체 출장 정지를 내렸다). 또한 계약 기간이 내년까지인 발렌타인 감독이 과연 새 출발에 어울리는 감독이냐는 것이다.


또한 팬들의 기대도를 무시할 수 없는 보스턴으로서는 성적을 전혀 신경쓰지 않을 수도 없으며 숨고르기를 길게 가져갈 수도 없다. 2004년 월드시리즈 우승 후 2007년 재우승까지 일어난 일들(케빈 유킬리스-자코비 엘스버리-존 레스터-클레이 벅홀츠의 등장)이 다시 재연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번 트레이드를 통해 후퇴한 '일보'는 생각보다 회복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1920년 1월 보스턴은 양키스로부터 12만5000달러를 받기로 하고 베이브 루스를 양키스로 넘겼다. 그리고 이는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바꿨다. 물론 이번 트레이드를 통해 건너간 것은 베이브 루스가 아니다. 하지만 보스턴은 루스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트레이드를 하게 됐다. 과연 이 트레이드의 승자와 패자는 누가 될까. 긴 기간 동안 이루어지게 될 채점 과정은 꽤나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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