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일레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에버튼에게 0-1 패배를 당한 21일(한국 시각), 에버튼 선발 명단에는 맨유 출신의 팀 하워드와 필립 네빌이 포함돼 있었다. 두 선수가 에버튼 소속으로 맨유와 상대한 지 각각 8년(네빌) 및 7년(하워드)이나 된 만큼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둘 다 2003-2004시즌 당시 맨유 주전이었다는 점이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9년 전에 이어 다시 한 번 4-2-3-1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9년 전인 2003년, 퍼거슨 감독은 데이비드 베컴과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을 모두 방출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대신 루드 반 니스텔루이가 중심이 될 새 시대를 구상했다. 반 니스텔루이 원톱의 4-2-3-1이 프리 시즌 내내 시험됐다. 공격수 출신의 올레 구나 솔샤르, 그때만 해도 섀도 스트라이커에 가까웠던 폴 스콜스, 윙어이자 플레이메이커였던 라이언 긱스가 ‘3’에 배치되어 반 니스텔루이를 지원 사격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 뒤를 햇병아리였던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도가 받쳤다.
구상은 금세 깨졌다. 막상 2003-2004시즌이 시작되자 4-2-3-1은 거의 가동되지 못했다. 솔샤르가 9월에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하며 윙포워드 자원이 부족해졌다. 여기에 에릭 젬바-젬바와 클레베르손 등 수비형 미드필더 영입이 모두 실패한 것도 큰 타격이었다. 결국 퍼거슨 감독은 4-5-1 혹은 4-3-2-1에 가까운 임시방편으로 한 시즌을 보냈고, 맨유는 3위에 머물렀다.
퍼거슨, 9년 만에 4-2-3-1 재도전
그리고 9년이 지난 지금, 퍼거슨 감독은 다시 4-2-3-1을 꺼내든 듯 보인다. 에버튼전 맨유의 최전방은 웨인 루니가 맡고, 그 뒤를 대니 웰벡, 가가와 신지, 나니가 지원했다. 공격수 웰벡이 왼쪽 측면에 배치된 건 맨유의 포진이 기존의 4-4-1-1이 아니라 4-2-3-1임을 뜻했다. 실제로 웰벡과 나니는 측면 미드필더가 아닌 측면 공격수로 움직였다. 후방으로 내려와 수비하는 빈도가 낮았다.
2003-2004시즌과 지금이 다른 건 공격형 미드필더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맨유 공격진은 포화 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화려해졌다. 방출설이 들리는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를 배제해도 하비에르 에르난데스, 웨인 루니, 로빈 반 페르시, 대니 웰벡, 가가와 신지, 루이스 나니, 에슐리 영 등 빼곡하다. 이 중 에르난데스를 제외한 모두가 2선 플레이를 소화할 수 있다. 에버튼전에서도 최전방 공격수로 나온 루니가 반 페르시 투입 이후 2선으로 내려갔고, 나중엔 두 공격수의 스위칭이 목격됐다. ‘3’과 ‘1’ 모두 풍족한 상황이다.
반면 문제도 있다. 9년 전보다 중원이 더욱 약해졌다. 그때는 전설적 미드필더 로이 킨의 노쇄화(당시 32세) 때문에 대체자를 찾아 해맸는데, 지금은 공격형 미드필더 출신의 스콜스가 38세의 나이로 중원을 책임지고 있으니 사태가 훨씬 악화한 셈이다.
4-4-1-1이라면 네 명의 미드필더가 수비벽 앞에 서는 만큼 스콜스가 책임질 범위가 좁지만, 4-2-3-1을 고수한다면 활동 범위 넓은 수비형 미드필더가 필수다. 그러나 스콜스의 파트너로 뛸 마이클 캐릭, 톰 클레버리, 안데르손 모두 수비력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 시즌 내내 병마와 싸운 대런 플레처가 은퇴하지 않은 채 복귀를 노리고 있지만 성사 가능성은 미지수다. 이적시장이 닫히기 전에 중앙 미드필더를 사지 않으면 팀의 균형이 붕괴된다.
문제는 퍼거슨 감독과 맨유 스카우트들의 수비형 미드필더 고르는 안목이 최악이라는 것이다. 킨(1993~2005) 영입 이후 20년 동안 들여온 미드필더 중 성공작은 캐릭 한 명 뿐이다. 킨 외에 괜찮았던 니키 버트, 네빌, 플레처, 스콜스 등은 모두 유소년팀 출신이었다. 앨런 스미스, 리오 퍼디난드, 존 오셔, 루니, 긱스 등 다른 포지션의 선수들이 임시방편으로 기용된 적도 있었다. 그나마 성공작이었던 오웬 하그리그스가 부상으로 주저앉는 악재까지 겹쳤다. 어차피 실패 가능성이 높아서인지 올 여름에는 미드필더 영입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 보인다.
이번에도 중앙 미드필더 영입은 없나
퍼거슨 감독은 활발하고 전투적인 중앙 미드필더 없이 좋은 팀을 만들 방법을 찾았고, 프리미어리그를 3연패한 2006~2009년에 보여준 모습은 그 정답에 가까웠다. 캐릭과 스콜스를 수비 라인 근처에 붙여 압박을 일정 부분 포기하는 대신, 호나우도·루니·테베스 등 발 빠른 올라운드 플레이어들로 초고속 역습을 감행했다. 여기에 박지성이나 긱스 등 좀 더 수비적인 선수 한 명을 배치해 캐릭과 스콜스를 돕게 했다. 당시 포진은 4-4-2, 4-2-3-1, 4-3-3, 4-4-1-1 등 다양했지만 모두 '퍼거슨식 역습 축구'의 일환이었다. 중원 장악력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전략이었다.
‘평범한 4-2-3-1’을 도입할 생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웰벡은 자기 진영에 웅크리고 있다가 폭발적으로 역습하는 선수가 아니다. 상대 진영에 머무르며 공격하길 선호한다. 심지어 측면 자원 중 가장 수비력이 뛰어난 박지성은 팔아 버렸고, 그 다음으로 수비력이 좋았던 발렌시아는 주전 오른쪽 수비가 애매한 사정상 측면 수비수로 자주 출장할 것이다. 이제 스콜스와 클레버리(혹은 다른 미드필더)를 수비적으로 도와줄 윙어는 아무도 없다.
맨유는 에버튼에 0-1로 졌다. 패배에도 불구하고 패스와 점유율 기록은 완벽해 보인다. 패스 횟수에서 에버튼의 두 배가 넘었고, 패스 성공률 88%, 점유율 69.2%를 기록했다. 그러나 에버튼이 맨유 진영에서 6차례의 태클에 성공한 반면, 맨유는 2회 성공에 불과했다. 에버튼이 맨유 진영에서 기록한 인터셉트는 4회였지만, 맨유는 총 8회의 인터셉트 중 단 한 개를 에버튼 진영에서 성공시켰을 뿐이었다. 중원 싸움에서 밀리다 보니 늘 자기 진영 깊숙한 곳에서 수비해야 했다는 의미다. 결국 많은 패수 횟수도 에버튼 진영까지의 거리가 멀었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에버튼은 맨유의 느린 공격에 대비할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퍼거슨 감독은 “꽤 좋은 경기였다고 본다. 우린 높은 점유율을 유지했고 마무리엔 실패했지만 좋은 장면들을 만들었다”며 패배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경기였음을 주장했다. 실제로 맨유 역시 여러 차례 득점 기회를 잡은 만큼 루니·가가와·반 페르시 등의 호흡이 잘 맞기 시작하면 득점력은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4-2-3-1을 계속 고집할 경우, 중위권 팀에도 중원을 내준 채 90분 동안 끌려다닐 수 있다. 어쩌면 퍼거슨 감독에게 필요한 선수는 아직 그럭저럭 팔팔한 필립 네빌일지도 모른다. 이적시장이 닫히기 전에 수비형 미드필더를 사야 팀의 균형이 맞겠으나, 퍼거슨 감독이 쇼핑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글=김정용 기자(redmir@soccerbest11.co.kr)
사진=PA(www.pressassociat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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