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마침내 결전의 날이 밝았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 진행 중인 유로2012는 이제 결승전 단 한 경기만을 남겨놓고 있다. 크고 작은 이변이 많았던 이번 대회에서 결승전에 오른 두 팀은 당위와 이변을 각각 상징한다. 유로2008과 2010년 월드컵을 연속 제패한 뒤 이번 대회에서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던 스페인의 결승 진출이 당위에 가깝다면, 골짜기 세대로까지 불린 이탈리아의 결승 진출은 이변의 키워드를 대표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대회에서 이 둘이 결승에 오를만한 경기력을 보여줬다는 데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각각의 스타일로 완전 무장한 두 팀의 결승전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까. 그리고, 최후에 웃는 자는 누구일까. 현지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풋볼리스트의 두 남자가, 각각 한 팀을 점지한 뒤 각 팀의 입장으로 결승전을 예상해봤다.
서형욱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
서형욱(이하 형) : 대한민국 축구팬들을 밤잠 설치게 했던 유로2012도 어느덧 끝물이다. 명승부도 많았고 기억에 남는 장면도 많았다. 결승에 오른 두 팀은 그럴만한 자격을 갖췄다고 본다. 둘 중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는 대진이 나왔다.
서호정(이하 호) : (형을 빤히 쳐다보며) 대회 전에 독일 우승 예상하지 않았나.
형 : (당황하며) 맞다. (잠시 주춤하며) 하지만 4강전에서 이탈리아에게 무기력하게 패했다. 이번 대회에서 독일이 꽃을 피우리라 생각했는데 모자란 점이 많았다. 이탈리아가 여러 면에서 더 나은 팀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서 결승전에서도 이탈리아가 선전할 것으로 생각된다.
호 : 나는 스페인이 우승해 메이저 대회 3회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세우리라 본다. 우승할만한 자격이 있는 팀이고, 결승전에서 이를 입증해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형 : 스페인이 지난 2개 대회(유로08, 2010월드컵) 우승 당시보다 전력이 약해진 것은 사실 아닌가. 그리고 결승에 올라오는 과정에서 다비드 비야의 공백도 크게 느껴졌다.
서호정, “스페인이 우승한다”
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호 : 맞는 말이다. 많은 이들이 스페인이 4년 전, 그리고 2년 전보다 약해졌다고 평가한다. 하지만어쩌면 당연한 일 아닐까? 우승 당시 공수 핵심 멤버였던 선수가 둘(푸욜, 비야)이나 빠졌고 챠비 는 지난 시즌 바르셀로나에서부터 노쇠화 현상을 보였다. 게다가 현대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양 측면 수비가 다른 포지션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스페인이 메이저대회에서 3연속 결승전에 올랐다는 것은 그들이 경기장 위의 여러 변수를 통제할 줄 아는, 이기는 방법을 터득한 챔피언이라는 증거나 다름없다. 그들은 여전히 세계축구사에 이름을 남길 미드필더들을 다수 보유했고 그라운드 위에서는 언제나 도전 받는 입장이다. 경기에서 주도권을 잡고 능동적으로 플레이하는 건 그들이다. 스페인은 결승에서 자기 플레이만 100% 소화하면 된다. 그러면 스페인은 여전히 전세계 어느팀을 상대로도 승리할 수 있는 전력을 갖췄다. 결승전의 압박감을 두번이나 이겨 낸 선수(카시야스, 사비, 알론소, 이니에스타, 파브레가스, 라모스, 실바 등)들이 팀의 주축이다. 이것은 이번 대회 참가한 팀 중 누구도 갖지 못한 자산이다.
형 :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상대할 팀이 이탈리아라는 것은 모든 변수를 감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탈리아는 상대팀이 자기 플레이를 100% 소화하지 못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조별리그에서 두 팀이 맞붙어 1대1로 비긴 경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경기 전, 그리고 경기가 시작된 이후에도, 상대팀의 움직임에 맞춰 전술을 변화하고 대응하는 프란델리 감독의 축구는 스페인에게도 큰 짐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스페인의 약점은 측면 풀백과 최전방 공격수라고 본다. ‘제로톱’이라는 과감한 시도가 가능했던 것은, 강력한 미드필드진을 보유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믿을만한 포워드가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토레스와 네그레도 등이 이번 대회에서 무적함대의 저격수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전술적 고려가 아닌 그들의 한계가 아닐까.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앞에 세웠을 때가 가장 위협적이었다는 것은 강력한 수비진을 갖춘 이탈리아를 상대할 팀에겐 여러 모로 골치아픈 대목일 것이다. 또한, 측면 풀백들의 공격 가담이 다른 팀들에 비해 적극적이지 않은 것도 이탈리아전에서는 약점이 될 수 있다.
이탈리아 선수들이 격전지 키예프 공항에 착륙했다. 부폰(왼쪽 두번째)과 피를로(오른쪽 두번째)는 이탈리아 우승의 키 플레이어다. (사진=연합뉴스) |
서형욱, “이탈리아가 유리하다”
호 : 이번 대회에서 프란델리 감독이 상대의 스타일에 따라 보여주는 변화무쌍한 전술적 대응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하지만 스페인 전에서의 대응법이 과연 성공이었을까? 나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였다고 본다. 이번 대회 이탈리아 전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피를로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스페인의 공격력을 완벽히 차단하진 못했다. 찬스에서의 집중력만 높았다면 스페인은 더 많은 득점을 할 수 있었다. 토너먼트에서 늘 칭송 받는 이탈리아의 빗장수비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수비 그 자체로는 이번 대회에서 그리 압도적이지 않다. 부폰의 슈퍼세이브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건 이탈리아 수비가 위기를 여러 차례 내줬다는 얘기다. 스페인은 기본적으로는 연계 플레이를, 그리고 상황에 따라 이니에스타, 실바, 나바스, 페드로 등 1대1 상황에서 직접 파괴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을 지녔다. 바르잘리, 보누치, 키엘리니 등은 강철의 수비수지만 스페인의 빠르고 유연한 2선 지원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긴 어려워 보인다.
형 :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웃음) 이번 대회에서 이탈리아가 보여준 최대 강점은 바로 미드필드에 있다고 본다. 네스타-칸나바로 시절보다 지금 수비가 강하냐고 묻는다면 아마 그렇다고 답할 사람 별로 없을거다. 하지만 포백 앞에서 수비를 보위하는 (포백 가동시) 다이아몬드 미드필드진의 견고함은 이들이 스페인에 대적할 유일한 상대라는 것을 의미한다. 피를로, 데 로시, 마르키시오, 몬톨리보, 모타 등이 배치될 이탈리아의 허리는 스페인의 화려한 미드필드에 비해 우리에게 덜 익숙한 이름일지 모르지만 각 개인의 뛰어난 능력과 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이탈리아를 결승전까지 끌어올린 최대의 힘이다. 특히, 수비와 미드필드에 이르는 광범위한 ‘유벤투스 커넥션’은 이탈리아를 상대로 스페인이 승리를 자신하기 힘든 대표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
양팀의 결승전 예상 포맷은?
호 : 스페인은 4강전과 달리 다시 제로톱을 들고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조별리그와 토너먼트에서 토레스와 네그레도를 원톱에 세웠지만 제로톱을 가동할 때의 경기력과 득점력이 나았다. 요렌테를 왜 활용하지 않는지는 의문이지만 결승전 한 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굳이 아쉬운 전술을 가동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무엇보다 조별리그에서 이미 제로톱 전술로 이탈리아 수비를 꽤 공략한 바 있다. 골은 한 번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득점으로 이어질 만 했던 찬스가 여러 번 창출했다. 후반 중반 이후는 사실상 원사이드한 게임이 됐다. 이탈리아 수비의 힘과 높이는 강력하다. 독일도 뚫지 못했다. 굳이 그들이 원하는 정공법을 택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파브레가스와 실바 등의 세우는 제로톱을 통해 미드필더 싸움을 확실히 가져가고 공격 루트를 다원화하는 것이 스페인에겐 유리한 선택이다.
형 : 프란델리 감독은 매우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이번 대회에서 이탈리아는 1-1 무승부를 거둔 2경기(스페인, 크로아티아)에서는 스리백을, 낙승한 아일랜드전(2-0)과 승부차기로 이겼으나 상대를 압도했던 잉글랜드전(0-0), 우승후보를 상대로 스코어 이상의 완승을 거둔 독일전(2-1) 에서는 모두 포백을 썼다. 특히, 8강과 4강에서 이탈리아의 다이아몬드 미드필드는 매우 큰 힘을 발휘했다. 조별리그 스페인 전에서 스리백으로 재미를 본 이탈리아지만, 조별리그와 결승전의 성격이 크게 다르다. 조별리그 1차전은 비기거나 져도 만회할 기회가 있지만, 결승전은 물러설 곳이 없는 경기다. 스페인 맞춤 전술이라 불렸던 스리백의 재현, 완성도 면에서 더 높은 점수를 줄만한 4-4-2 다이아몬드 포맷 사이에서 프란델리 감독의 고민이 깊어질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4-4-2 다이아몬드 포맷에 모타를 전반, 몬톨리보를 후반에 내세우는게 어떨지 싶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스페인의 이니에스타가 이탈리아 골문을 향해 슛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스페인의 이니에스타 vs 이탈리아의 피를로
호 : 결승전의 키플레이어로 스페인에서는 이니에스타를 꼽고 싶다. 이니에스타는 이번 대회 스페인의 에이스다. 대부분의 찬스가 그를 거쳐 이뤄진다. 포르투갈과의 4강전을 비롯해 찬스에서 확실히 해결해주는 부분이 아쉽긴 하지만 결승전에서도 그의 영향력이 커야 스페인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수비에서는 라모스의 역할이 기대된다. 특유의 운동능력으로 이탈리아 공격의 폭탄인 발로텔리를 통제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다. 두 선수는 조별리그에서도 잦은 1대1 장면을 보여줬다. 게다가 라모스는 원래 포지션인 측면 수비에 대한 커버까지 맡아야 한다. 측면으로 빠지는 플레이를 잘하는 카사노와도 자주 부딪히게 될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이탈리아를 상대한 팀들은 모두 피를로를 막는 데 실패하며 무너졌다. 조별리그에서 역시 피를로를 적절히 봉쇄하지 못한 부스케츠가 결승전에선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도 관심을 가질만한 대목.
형 : 이탈리아에서는 역시 피를로다. 이탈리아가 스페인을 상대로 점유율에서 이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공격시 중원에서 많은 시간을 끄는 플레이보다는 뒷선에서 앞으로 찔러주는 패스의 정확도가 승리의 열쇠가 된다. 포백 앞에 위치하면서 경기장 전체를 꿰뚫는 피를로의 시야와 한치의 오차도 없는 발끝이 이번에도 건재하다면, 이탈리아의 승리는 피를로에 의해 완성될 것이다. 상대 공격의 타이밍을 끊는 수비와 패스 차단 능력 역시 이탈리아가 피를로에게 많이 의지하는 부분이다. 한 가지 더, 조별리그에서 선보인 위협적인 프리킥 능력 또한 피를로를 키플레이어로 꼽는 이유다. 오픈 플레이에서 기회가 여럿 만들어지기 힘든 상대가 스페인이다. 몇 차례 되지 않는 제한적인 셋피스 상황에서 피를로의 정밀한 킥력은 빛을 발할 것이다. 또한, 제공권 다툼에서 분명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이탈리아 선수단 구성을 보면, 코너킥 상황에서 피를로의 킥이 한 골 정도 만들어주리라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모두가 참가를 기대하지 않던 상황에서 이탈리아 공격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카사노의 활약을 예상해본다.
스페인의 카시야스와 이탈리아의 부폰이 정면 대결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호 :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한 시대를 풍미한 양 팀 골키퍼들이 벌일 ‘지존 대결’이 아닐까. 대륙 대회 우승컵을 놓고 맞붙는 경기인만큼 경기의 결과가 지리하게 이어진 두 골키퍼들의 우위 논쟁에 이정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형 : 그렇다. 이번 대회 결승전이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남긴다면, 아마도 이 두 선수가 어떻게 우승 트로피를 지켜냈는지에 대한 처절한 보고서가 될 수도 있겠다. 우리 시대 최고의 골키퍼를 꼽으라면 아마 그 누구도 이 둘을 빼놓고는 입을 떼기 힘들 것이다. 이탈리아의 지안루이지 부폰은 이번 대회에서 그야말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경기당 3회가 넘는 세이브 기록은 종종 위기를 자초했던 수비진의 흠을 완벽히 덮어주는 수준이었다. 독일전에서 로이스의 그림같은 프리킥을 걷어낸 순간은 수 많은 명장면의 일부에 불과하다. 페널티 에어리어 안을 폭넓게 커버하고, 공중볼이나 땅볼 모두에 빈틈없이 반응하는 뛰어난 능력은 여전히 그의 전성기가 현재진행형임을 말해준다.
카시야스 vs 부폰, 세기의 대결
호 : 부폰이 최고 수준의 골키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건 카시야스도 마찬가지다. 스페인의 가장 중요한 선수, ‘성자’ 카시야스가 지난 다섯 경기에서 보여준 놀라운 활약을 변함 없이 이어간다면 스페인이 우승을 거머쥘 것이다. 만일 양팀이 정규시간과 연장전 내에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승부차기로 가게 된다면 카시야스와 부폰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골키퍼 타이틀을 건 진검 승부를 치르게 된다.
형 : 굳이 내가 독일을 우승팀으로 점찍었기 때문이 아니라 (웃음) 독일이 결승에 오르지 못한 것은 분명 의외이긴 하다. 그리스와의 8강전을 현지에서 지켜보며 독일과 스페인의 결승을 다시 한 번 상상했던 것은 독일이 기대만큼의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은 견고했지만, 이탈리아는 골결정력에 아쉬움이 있었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독일은 전술적 패착으로 생긴 틈바구니에서 이탈리아의 결정력이 살아났다. 발로텔리가 대폭발한 것이다. (웃음) 오히려 나는 스페인이 결승에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었다. 현지에서 경기를 보는 동안 호날두를 앞세운 포르투갈의 팀웍이 굉장히 단단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과 스페인 중에 발을 헛디딜 팀이 나온다면 독일보단 스페인일거라고 봤었다. 하지만 결국 내 예상이 발을 헛디딘 셈이 됐다. (웃음)
호 : 내 경우엔 독일의 강력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으면서도 내심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재대결을 기대했던 터였다. 이탈리아가 고비를 잘 넘기고 결승전에 올라와 준 데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 그단스크에서 열렸던 두팀의 조별리그는 아마 10년이 지나도, 20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을 수준 높은 경기였다. 다시 만나도 그런 레벨의 경기를 펼쳐줄 거란 확신에 가까운 기대감이 있어서 둘의 만남을 꼭 이번 대회가 끝나기 전에 다시 보고 싶었다. 유로2012는 수준급 대회다. 유로2004와 2008에 비해 전반적인 경기의 질이나 스타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그 화룡정점을 결승전이 제대로 찍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시 만나게 된 카시야스와 발로텔리. 이번엔 누가 웃을 것인가. (사진=연합뉴스) |
형 : 두 팀의 재대결을 기대했던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마도 많은 축구팬들이 그런 기대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 기대에 부응하는, ‘세기의 경기’가 펼쳐지기를 기대해본다. 골이 많이 터진다고해서 멋진 승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여전히 최고의 승부로 꼽고 가슴 설레하는 유로 경기는 2000년 대회 4강전 네덜란드-이탈리아 전이다. 0-0이 이토록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려준 경기였다. 아, 하지만 한국팬들 생각하면 이번 결승전에서는 솔직히 골이 많이 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웃음) 아무튼 새벽 3시반에 일어난 팬들 입에서 ‘본전 생각’ 나지 않도록 멋들어진 명승부 펼쳐지길 기대하고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