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일레븐=키예프/우크라이나)
이탈리아는 축구계 눈치 싸움의 일인자다. 하지만 체사레 프란델리 이탈리아 감독은 심리전에 관심이 없다. 일찌감치 결승전 전술을 공개했고 훈련 취재도 굳이 막지 않았다. 상대팀 눈치 보지 않고 제 할 일을 하겠다는 당당함이 느껴졌다.
유로 2012 결승전을 하루 앞둔 1일(한국 시각) 오전,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올림픽 경기장에서 프란델리 감독이 주장 부폰과 함께 기자회견을 가졌다. 인터뷰는 훈훈하게 시작됐다. 조르조 나폴리타노 대통령이 이탈리아 선수단에 격려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아울러 결승전 다음날 로마 대통령궁으로 선수단을 초청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프란델리 감독은 “대통령의 편지가 팀의 정신을 고양시켰다. 우리 모두 아주 자랑스럽다”며 선수단의 자긍심이 향상됐다고 밝혔다.
이어진 인터뷰 중 흥미로웠던 것은 결승전 전술에 대한 프란델리 감독의 거침없는 답변이었다. 이탈리아는 이번 대회에서 스리백과 포백을 혼용한 유일한 팀이다. 조별 리그 1차전 스페인전에서는 스리백을, 최근 3경기에서는 포백을 사용했기 때문에 둘 중 어느 시스템으로 결승전에 나설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가만히 있어도 스페인을 혼란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스리백 관련 질문을 받은 프란델리 감독은 직설적으로 포백 구사를 천명했다. “지난 몇 경기 동안 잘 작동한 시스템을 바꾸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네 명의 수비수 앞에 다이아몬드형 미드필더를 배치하는 4-3-1-2를 공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거칠 것 없는 태도였다.
이후에도 프란델리 감독은 이탈리아의 결승전 계획을 짐작할 수 있는 말을 여러 번 흘렸다. “미드필더들 사이의 공간을 좁히겠다.” “우리 중앙 미드필더들의 수준이 높다. 활동량과 압박에 능하다. 미드필더들이 공을 빼앗아주면 피를로가 공간으로 공을 연결할 것이다.” “독일전(준결승)을 준비할 당시 비디오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훈련을 통해 내일 경기를 시뮬레이션해 보겠다.”
델 보스케 스페인 감독과 비교해보면 프란델리 감독의 솔직담백함이 더 도드라진다. 뒤이어 인터뷰를 가진 델 보스케 감독은 제로톱과 원톱 중 어떤 전술을 쓸 것이냐는 질문에 “우리는 세 명의 공격 자원을 가동할 것”이라며 얼버무렸다. 스페인의 공격 배치는 이탈리아의 수비 숫자만큼 민감한 문제다. 프란델리 감독은 “지금 속에 있는 말은 다 할 수는 없다”고 말했지만, 델 보스케 감독에 비하면 훨씬 많은 속내를 털어 놓은 셈이다.
훈련 때에도 이탈리아는 보안 유지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 양팀 훈련 모두 15분씩만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이탈리아 훈련 때는 기자들에게 별다른 제제가 없었고, 원하는 사람은 끝까지 남아 모든 훈련을 관찰할 수 있었다. 연습 경기에서 각 선수들이 어떤 포지션에서 뛰는지 낱낱이 밝혀졌다. 컨디션이 나쁜 바르잘리와 데 로시가 그라운드 중앙에 주저앉아 쉬는 모습도 그대로 노출됐다.
반면 스페인 훈련에 대한 통제는 칼 같았다. 훈련이 공개된지 10분 정도가 흐르자 잠시 후 나가야 한다는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결국 공개된 것은 스트레칭 등으로 몸을 푸는 모습뿐이었다.
이탈리아의 감출 것 없다는 태도는 처음이 아니다. 프란델리 감독은 깜짝쇼에 관심이 없다. 대회 첫 경기였던 스페인전을 앞두고도 공공연히 스리백 훈련을 하며 자신들의 전술을 노출했다. 준결승을 앞두고도 키엘리니의 왼쪽 수비수 기용 의사를 굳이 감추지 않았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최선을 다해 훈련한 덕분에 이탈리아의 전술 완성도는 이번 대회 어느 팀보다도 높았다.
프란델리 감독의 ‘마이 웨이’는 이제까지 치른 5경기에서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고, 이탈리아는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결승전 뿐이다. 대회 우승팀을 가리는 마지막 일전은 2일 오전에 벌어진다.
글, 사진=김정용 기자(redmir@soccerbest1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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