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9일 금요일

처음이자 마지막, 홍명보의 올림픽











홍명보는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다. 그를 최고라 부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국제무대에서의 활약이다. A매치 136회로 한국 선수 중 최다 출전을 자랑하고 월드컵에도 4회 연속 출전(1990년, 1994년, 1998년, 2002년)했다. 전 세계를 뒤져도 그만큼의 커리어를 지닌 축구인은 드물다.


그런 홍명보가 유일하게 인연을 맺지 못한 무대가 있다. 바로 올림픽이다. 월드컵 본선 경기 출전만 16회에 달하는 그가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한 것은 의외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연령 기준에 약간 모자라 가지 못했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은 비쇼베츠 감독이 원치 않아 와일드카드로 선발되지 않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은 허정무 감독에 의해 와일드카드로 선택됐지만 대회를 앞두고 부상을 당해 낙마했다. 그렇게 선수로서의 올림픽 무대에 대한 도전은 허무하게 끝났다.


2012년, 드디어 홍명보는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됐다. 비록 선수가 아닌 감독이지만 그에게는 새로운 감회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코치로서 참가했지만 당시엔 철저한 조력자였다. 런던올림픽은 홍명보 감독이 주연 자격으로 나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이다. 2009년부터 3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그의 도전은 이제 피날레를 준비한다. 지난 6월 초 만난 홍명보 감독은 그 3년의 시간을 돌아보고 최종시험을 준비하는 심정을 밝혔다. 그리고 그 3년의 준비기간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본선으로 가기 위한 18인을 선택해야 한 지난 한달간의 고뇌도 털어놨다.







광저우아시안게임 3-4위전 후 박주영과 포옹하는 홍명보 감독, 이 날이 런던올림픽으로 가는 출발점이 됐다 (사진=연합뉴스)

■ 광저우의 눈물, 런던의 환희를 다짐하다
런던올림픽으로 향하는 홍명보호의 출발을 살피기 위해선 기억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당시 홍명보 감독은 2009년 U-20 월드컵에서 8강 진출을 이끈 21세 이하 선수들을 주축으로 삼고 박주영, 김정우(이상 와일드카드), 신광훈, 김주영(이상 23세 이하)을 발탁해 대회에 나섰다. 조별리그와 16강, 8강에서 승승장구한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4강에서 UAE를 만났고 경기 내내 파상공세를 펼쳤지만 연장 후반 15분에 실점을 하며 탈락했다.


금메달이라는 유일한 목표에 실패했기 때문에 홍명보 감독은 비난의 십자포화를 감수해야 했다. 21세 이하 선수들을 대거 뽑은 그의 선택과 UAE전에서의 용병술, 전술 구사 등이 모두 금메달 실패와 동시에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홍명보호는 아무런 의욕도, 동기부여도 없었던 이란과의 3-4위전에서 새로운 희망을 남겼다. 전반에만 두골을 내준 채 끌려 간 홍명보호는 1-3으로 패색이 짙던 후반 32분부터 13분 간 세골을 터트리며 4-3 역전승을 거뒀다. 비록 금메달은 놓쳤지만 2년 뒤를 기약할 수 있는 희망의 동메달을 쏜 그 경기 후 라커룸은 눈물바다가 됐다. 홍명보 감독은 그날이 아시안게임의 끝인 동시에 런던올림픽을 향한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UAE전이 끝나고 정말 힘들었다. 실망감을 많이 안은 게 사실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도 못했다. 당시 3-4위전을 앞두고 체력 상태가 최악이었다. 이틀을 쉬고 경기에 나서는 게 반복된 상황이었다. 전반에 0-2로 진 채 선수들이 라커룸에 들어왔다. 하고 싶지도 않고 어려운 경기라는 게 선수들 눈에서 보였다. 내가 늘 원했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없었다. 오직 박주영만이 열심히 뛰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야단을 쳤다. ‘멀리서 온 박주영은 명분도, 실리도 없는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는데 너희들은 부끄럽지도 않냐?’고 얘기했다. 결국 후반에 선수들이 원래 상태를 되찾았고 정말 최선을 다해줬다.”







홍명보 감독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가 됐다고 말했다 (사진=도현석 작가)

“2009년에 우리는 모두의 기대를 넘는 성과를 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실패라는 과정을 겪을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다. 2년 뒤 올림픽에서 23세가 될 선수들을 대거 데리고 간 것도 그래서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국제경험이었다. 아시안게임은 올림픽을 치르기 전 경험할 수 있는 마지막 토너먼트제 국제대회였다. 경기가 끝나고 많이 울었다. 나는 잘 울지 않는 편인데 그때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비록 동메달에 그쳤지만 그 힘들었던 과정을 잘 아니까. 마지막에 선수들에게 ‘우리가 여기서 배운 건 분명 올림픽에 가게 되면 아주 큰, 긍정적인 자산이 될 거다. 꼭 그렇게 되도록 만들자’고 했고 모두 2년 뒤를 기약했다.”


만일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면 어떻게 됐을까? 올림픽 예선을 치르는 홍명보호에게 동기부여는 없었을 것이다. 동기가 없으면 열정도, 의지도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날의 실패는 홍명보 감독과 선수들이 지난 1년 간 중복차출 문제로 인한 고전 속에서도 본선행 티켓을 따낼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 그리고 홍명보호는 지금 광저우의 눈물을 잊게 만들 런던에서의 환희를 준비 중이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많은 경험을 했다. 병역이라는 부담감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아시안게임이든, 올림픽이든 늘 먼저 나오는 게 병역혜택이다. 아시안게임 때는 선수들에게 병역의 병도 말하지 못하게 했다. 우리는 병역혜택을 위해 나온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축구 종목을 대표해 나갔던 거다. 그런데 과정을 한번 치러보니까 조금은 유연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올림픽엔 좀 자연스럽게 대하려고 한다. 병역혜택이 좋은 동기부여라면 그걸 그렇게 받아들이겠다. 지금은 오픈하고 인정하려고 한다. 선수들도 한결 편해질 것이다. 토너먼트 안에서도 많이 배웠다. 2009년 U-20 월드컵은 사나흘 단위였는데 아시안게임은 이틀 단위였다. 2년 전엔 프로 진입 단계에 있던 선수들이라 그런 상황이 낯설었다. 그 경험을 통해 토너먼트에서의 다양한 상황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었다.”







힘든 최종예선 과정을 통해 홍명보호는 한층 성장했다 (사진=연합뉴스)

■ 죽어도 팀이고, 살아도 팀이다
올림픽으로 가는 예선 과정은 홍명보호라는 팀이 완성된 중요한 단계였다. 선수 개인이 아닌 팀(Team)을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삼는 홍명보 감독은 중복 차출로 인한 조광래 감독과의 보이지 않는 갈등을 조직력 강화로 정면 돌파했다. 오만과의 최종예선 첫 경기 때는 A대표팀에서 어떤 선수가 올 수 있는지 확인조차 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 예전 같았으면 올림픽대표팀에게도 예선 과정에서 합숙 훈련이 허락됐지만 홍명보호의 최종예선 과정 중 장기 소집이 허락된 것은 1월 킹스컵을 전후한 중동 2연전 준비 기간뿐이었다. 그런 고난이 오히려 홍명보 감독과 선수들로 하여금 시련을 뚫고 더 단단해지게 만든 시기였다. 당시는 매 순간이 걱정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성장의 시간이었다. 백성동, 박종우, 한국영, 장현수 등 새로운 선수들이 올림픽 대표팀의 주력으로 올라서며 팀의 경쟁력도 강화됐다.


홍명보 감독은 말한다. “나는 죽어도 팀이고, 살아도 팀이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팀이다”라고. 이어서는 이번 유로2012에서 화려한 선수 진용에도 불구하고 조별리그에서 3전 전패로 탈락한 네덜란드의 예를 들며 제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팀으로서 조화되지 않으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진리를 강조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 위대한 감독은 없다. 팀이라는 영역 안에 감독도 있고 선수도 있다. 그 안에서의 역할은 지원스탭과 다를 바 없다. 누가 더 우위고, 더 아래고가 없다. 그래서 팀원 모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개인이 강하지만 전체로서는 약한 팀이 있다. 반면 개인은 약해도 하나가 돼 강한 팀이 있다. 나는 개개인의 능력은 조금 부족해도 강한 팀을 만들고 싶다.”


올림픽대표팀은 A대표팀에 비해 대우가 좋은 팀은 아니다. 이미 A대표팀의 주력이 된 구자철, 김보경, 홍정호, 김영권 등은 늘 홍명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한다.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크지만 홍명보호로 가고 싶다는 소망을 숨기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능이 아닌 진심을 뽑아내기 위해 선수들을 존중하는 홍명보 감독 (사진=도현석 작가)

“이 팀에 오면 자신들이 존중 받는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런 게 아닐까? 훈련이 고되고 경기에 대한 압박이 큰 건 같지만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존중 받을 수 있다. 나는 선수들을 도구로 삼지 않는다. 내가 이 팀에 있을 수 있는 건 선수들 덕분이다. 판단하고 책임지는 건 내 몫이지만 그들이 훈련장에서, 경기장에서 자기 역할을 다해주기 때문이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다. 내가 그들을 존중해줘야 하는 건 당연하다.”


홍명보 감독은 지난 6월 초 KBS가 방영한 올림픽 대표팀 다큐멘터리 ‘공간과 압박’에서 “나는 늘 칼을 품고 다닌다. 너희들을 지켜주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팀을 위해 죽어라”고 말했다. 자신을 위하는 선수들을 위한 철저한 존중과 보호, 기능이 아니라 진심을 끌어내는 그의 리더십은 선수가 가진 능력을 항상 100% 발휘하게끔 만든다. 비록 선수 개인의 재능은 80점짜리에 불과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발휘해내면 그것이 시너지효과를 내 팀이 100점짜리 재능을 보이는 것이 홍명보 감독의 변치 않는 철학이다.


“축구 선수나 감독은 잘하면 칭찬받지만 못하면 비난 받는다. 내가 감독이 되면서 세운 절대적인 가치관은 하나다. 절대 남 탓 하지 않는 거다. 우리 팀이 잘하면 선수들 덕분이고, 못하면 전적으로 내 탓이다. 대신 선수들은 내가 요구하는 걸 보여줘야 한다. 잘하는 것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한다.”







29일 올림픽에 나설 최종명단을 발표한 홍명보 감독은 "살을 도려내는 아픔이었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 18인 선택을 위해 나쁜 지도자가 되다
최종엔트리 발탁을 위한 마지막 평가전이었던 시리아전을 마치고 만난 홍명보 감독은 큰 고뇌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감독을 맡고 보낸 지난 3년 3개월보다 지금 이 한달여의 시간이 더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런던으로 가기 위한 18인의 최종엔트리 구성에 모든 신경을 쏟고 있었다. 예선 때만 해도 23인 엔트리를 구성할 수 있었지만 올림픽 본선은 그보다 축소된 18명만 뽑아야 한다. 거기에 전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3인의 와일드카드, 그리고 유럽파를 보강하면 예선에서 동고동락한 선수들은 대거 희생될 수 밖에 없다. 홍명보 감독은 “지금은 감독이 냉정해져야 한다. 내가 악역을 맡을 수 밖에 없다”며 엔트리 구성에 대한 윤곽을 밝혔다.


“예선에서 고생한 선수들은 모두 공헌도가 높다. 하지만 그것만을 기준으로 삼을 순 없다. 올림픽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한 구성을 해야 한다. 공헌도만 높고 보면 유럽에서 뛰는 유능한 선수들은 최종예선에서 뛰지 못했기 때문에 본선에는 갈 수 없다. 좋은 걸 가진 선수들을 내팽개치는 건 감독으로선 옳은 선택이 아니다. 공헌도와 재능, 두 요소를 모두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너무 감정적으로 상황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최고의 선수를 뽑아서 그 동안 우리 팀이 지켜온 것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합류하게 될 선수들이 이미 경험을 해봤기에 그런 팀 문화와 분위기를 깨질 않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올림픽은 월드컵을 비롯한 다른 대회에서 비해 숫자가 적지만 일정은 더 빡빡하다. 포지션 별로 두배의 선수가 필요한데 18명으로 22명의 효과를 내야 한다. 그런 마법을 부릴려면 방법은 하나다. 멀티 플레이어를 뽑을 수 밖에 없다. 절대적인 능력의 스페셜리스트를 기본적으로 확보하고 백업 멤버들은 다양한 포지션 소화 능력을 봐야 한다.”


29일 홍명보 감독이 발표한 18인 명단에는 당시의 고민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풀백과 센터백을 모두 볼 수 있는 수비수 황석호, 미드필드에서 두 포지션 이상을 소화할 수 있는 백성동이 선발됐고 좌우 측면 수비를 모두 책임질 수 있는 김창수가 와일드카드로 최종 선발됐다.


6월 초부터 홍명보 감독은 와일드카드를 일찌감치 확정하고 최종 조율을 남겨 둔 상태였다. 그가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골키퍼였다. 이범영과 김승규라는 장래가 촉망되는 두 골키퍼가 있지만 소속팀에서 매 경기를 치르지 못하는 약점이 있었다. 더군다나 골키퍼는 토너먼트 대회에서 팀의 경기력에 전체적인 영향을 미치는 포지션이다. 경험이 가장 중요한 자리. U-20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서 홍명보 감독은 골키퍼의 경험 부족으로 각각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트라우마가 있다. 결국 그는 A대표팀의 주전골키퍼 정성룡을 택했다. 홍명보 감독은 “현재 정성룡을 마음에 두고 있다. 수원 구단과 윤성효 감독님께 연락을 하면서 조율 중이다. 선수 본인도 의지가 강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본다”고 말했었다. 결국 정성룡은 29일 최종명단에 이범영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세컨드 골키퍼로 이범영이 선택된 것은 최종예선에서 다섯 경기에 출전해 활약한 면과 정성룡을 보조해야 하는 후보선수로서의 긍정적인 캐릭터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홍명보 감독은 당초 이정수를 선발해 부상 당한 홍정호의 공백을 메우려 했지만 소속팀의 반대로 무산됐다 (사진=도현석 작가)

또 하나 고민했던 와일드카드는 센터백이었다. 홍정호가 4월 말 K리그 경기 도중 부상을 당했고 무릎 인대 수술이 필요해 올림픽 출전이 좌절되면서 불쑥 솟아난 고민이었다. 홍명보 감독은 이정수와 조용형을 고려했다. 당초 언론에서는 곽태휘도 거론했지만 23세를 초과한 선수 중 지난 4월 제출한 50인 예비 엔트리에 들었던 선수는 이정수와 조용형 둘이었다. 아주 작은 가능성을 고려해 넣은 것이었지만 홍정호가 부상을 당하며 홍명보 감독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고 A대표팀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정수를 최우선 고려했다.


“이정수는 처음엔 생각도 안했다. 예비 엔트리에도 안 넣으려고 했다. 홍정호와 김영권, 장현수가 있으면 센터백엔 와일드카드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일의 가능성을 대비해 넣었다. 난 홍정호가 올림픽에 못 갈 거란 생각은 한번도 안 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하면서 이정수를 심각하게 고려하게 됐다. 아무래도 카타르리그가 휴식기기 때문에 K리그에서 뛰어난 수비수를 선발하는 것보다 부담이 덜한 면도 있다.”


그러나 이정수는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정수 본인의 의지는 강력했다. 당초 중국의 클럽으로 이적하려 했지만 홍명보 감독의 제의를 받고는 알 사드와 2년 재계약에 사인했다. 그런데 정작 보내주리라 믿었던 알 사드가 올림픽 출전을 강력히 반대했다. 홍명보 감독은 최종명단 발표 하루 전까지 이정수를 선발하겠다는 뜻을 갖고 마지막 연락을 기다렸지만 알 사드는 최종적으로 거부 의사를 보냈다. 홍명보 감독은 결국 기존의 김영권, 장현수, 황석호를 센터백 자원으로 분류하고 좌우 측면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김창수를 와일드카드로 부르는 2안을 뽑아 들었다.


와일드카드는 아니지만 와일드카드급 선수인 기성용의 발탁도 눈길을 모았다. 인터뷰 당시 홍명보 감독은 “기성용의 합류는 확정적이다”라고 말했다. 공헌도는 높지 않지만 기량만으로는 당연히 선발해야 하는 대표적인 선수였다. 기성용은 홍명보 감독 체제 하에서 2009년 12월 일본과의 평가전에 출전한 것이 유일한 소집 시기였다. U-20 월드컵은 A대표팀과의 차출 안배 차원에서, 광저우게임은 소속팀 셀틱의 반대로 참가하지 못했다.


“기성용은 매력적인 선수다. 그 나이에 그 정도 기량과 경험을 갖춘 선수는 많지 않다. 우리 팀에 도움이 된다는 건 확실하다. 공헌도는 높지 않지만 그걸로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 본인이 어떻게 생각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팀에 들어와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이 팀에 들어오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동해야 한다. 실은 5월에 기성용과 자리를 갖고 얘기를 나눴다. 그때 기성용이 지금 자기가 올림픽대표팀에 들어가도 되겠느냐는 미안함과 부담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동일한 위치에서 동료들과 경쟁하겠다는 마음가짐을 보였다. 팀의 일원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을 확인을 한 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박주영은 홍명보 감독의 설득으로 병역이행을 약속하고 올림픽대표팀에 합류했다 (사진=연합뉴스)

■ 박주영도 팀원 중 한명일 뿐
그리고 가장 먼저 확정된, 논란의 와일드카드는 박주영이었다. 박주영은 홍명보 감독이 일찌감치 원했던 선수였다. 23세 이하 연령대의 선수들은 K리그에서 외국인 공격수와 경험 많은 국내 공격수에 밀려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기 힘들다. 때문에 현재 한국의 스트라이커 자원 중 가장 위력적이라는 박주영을 일찌감치 낙점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주영 선발을 위해선 최대 장벽이 있었다. 지난 3월 유럽에서의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박주영은 병역 연기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이민자법을 악용했다는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었다. A대표팀의 최강희 감독도 그 부분에 대한 부담으로 6월 시작된 월드컵 최종예선에 박주영을 선발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박주영이 반드시 필요했던 홍명보 감독은 인터뷰 당시 이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고 이미 한 차례 접촉한 상태였다.


“최근 박주영과 개인적으로 만나 얘기를 나눴다. 병역 논란으로 인해 A대표팀에서 뽑지 않았기 때문에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나도 못 뽑는 상황이다. 그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무슨 이유로 박주영을 뽑았냐고 할 때 답을 할 수 없다. 박주영에게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뽑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7월 2일 최종명단이 소집되는 당일 파주에 모인 미디어가 올림픽팀이 앞으로 무엇을 할 거냐를 질문해야 하지, 왜 박주영을 뽑았느냐에만 신경을 집중하는 그림은 보고 싶지 않다. 훈련과 대회 준비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박주영 한명으로 인해 팀이 망가진다.”


“이 이야기가 나가면 바깥에서는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볼 거라는 것도 안다. 최강희 감독님이 뽑지 않으셨는데 내가 뽑는 것은 분명 그림이 이상하다. 그런데 한편으로 내가 해소를 한다면 다음에 최강희 감독님이 뽑는 데 부담이 적으실 거다. 실은 그 부분에 대해 최강희 감독님께 전화를 해서 사전에 얘기를 드렸다. 최 감독님은 A대표팀의 감독이자 각급 대표팀의 수장이다. 당연히 논의를 해야 할 문제다. 박주영도 내 말을 잘 안 듣는다. 그래서 박주영과는 늘 정직하게 대화하려고 한다. 우선 박주영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들어봤다. 그리고 내 입장을 얘기했다. 서로가 무얼 원하는지는 통한 상태다.”







홍명보 감독에겐 박주영도 올림픽에 나서는 18인 중 1인일 뿐이다 (사진=도현석 작가)

결국 박주영은 홍명보 감독의 요구에 답했다. 박주영은 지난 13일 홍명보 감독과 함께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고 미디어 앞에서 “병역을 이행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그날의 기자회견은 곧 박주영이 와일드카드로 선발됐다는 의미였다. 기자회견 다음 날 박주영은 일본으로 건너갔고 올림픽대표팀의 이케다 세이고 피지컬 코치와 함께 J2리그의 반포레 고후에 합류해 몸 만들기에 들어갔다. 현재 박주영은 지구력 훈련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공을 이용한 경기 감각 끌어올리기 단계에 들어선 걸로 알려졌다. 홍명보 감독은 29일 최종명단 발표 후 “박주영에 대한 확신은 없다. 몸을 만드는 과정이고 최근 보고에 따르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확실한 건 올림픽을 시작하는 시점에 박주영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그 역시 벤치에 앉아야 한다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합류하게 된 이상 박주영도 팀원일 뿐이면 특별대우는 없다는 것이다. 박주영을 양날의 검으로 휘두르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 나의 2012년 달력은 8월 11일까지다
홍명보 감독은 엔트리 확정과 동시에 올림픽 본선에서 만나게 될 조별리그 상대에 대한 분석에도 큰 신경을 쓰고 있었다. 멕시코, 스위스, 가봉을 상대하는 홍명보 감독은 1, 2차전 상대인 멕시코와 스위스의 분석에 집중하고 있다.


“상대팀에 대한 비디오 분석은 한참 진행 중이다. 어떤 선수가 나올 지 정해지지 않은 게 변수지만(※ 현재 멕시코는 최종명단 발표), 감독이 바뀌지 않는 한 시스템이나 축구 색깔은 바뀌지 않는다. 멕시코는 내가 중남미 대회에 가서 두경기를 봤고, 코치들이 프랑스 툴룽 대회에 가서 세경기를 확인한다. 스위스도 세경기 정도 확인할 계획이다. 가봉이 미지수인데, 다행히 조추첨 후 핌 베어벡 감독이 비디오 자료를 전해줘 분석 중이다. 가봉은 마지막 경기니까 결국 앞선 조별리그 두 경기를 바탕으로 분석을 완료할 것이다.”


“역시 멕시코와의 첫 경기가 가장 중요하다. 올림픽은 이틀을 쉬고 경기를 해야 한다. 만일 첫 경기를 진다면 그 분위기와 영향을 빨리 회복시킬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다. 이기고 간다면 피로감을 쉽게 털 수 있는데 그게 안되면 육체적 정신적 회복의 텀이 짧다. 멕시코는 반드시 이기고 가야 한다. 스위스는 굉장히 까다로운 팀이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붙어봤지만 스위스 같은 타입이 우리가 가장 힘든 스타일이다. 하지만 역시 꺾어야 한다. 스위스를 잡아야 8강 이후의 토너먼트를 안정적으로 준비할 수 있다. 달리 방법이 없다. 모두 이기기 위해 목표를 놓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올림픽은 월드컵을 비롯한 다른 대회보다 목표가 높다. 한국은 역대 올림픽에서 늘 타종목과 같은 메달 획득을 지상과제로 부여 받았다. 하지만 현실은 아테네올림픽 8강 진출이 최고 성적이다.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클 수 밖에 없다. 홍명보 감독은 의외로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계단씩 밟으며 올라온 자신과 선수들이 그 부담을 초월할 수 있을 거란 믿음에서였다.


“지금은 괜찮다. 압박감은 아시안게임을 통해 확인해 보니까 나도 선수들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방법적인 준비가 서게 되더라. 그 경험 덕에 지금은 조금 편하다. 나는 올림픽을 치르는 동안 후회 없는 날들이 되길 기원한다. 나 자신에게도, 선수들에게도, 이 팀에게도. 대회가 끝나고 ‘그땐 이랬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후회를 아주 조금이라도 남기고 싶지 않다. 선수들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준비하는 시간 동안, 대회를 치르는 동안 정말 소중한 추억으로 남기겠다. 하지만 즐긴다는 말은 틀렸다. 즐기는 건 결과를 즐기는 거다. 과정은 혹독해야 한다. 각오가 돼 있다.”







홍명보 감독은 3년을 넘게 준비한 올림픽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진=도현석 작가)

2009년 2월, 홍명보 감독이 U-20 대표팀을 맡으면서 시작된 런던 올림픽에 대한 도전은 이제 마지막 단계에 서 있다. 그 과정 동안 그는 정말 홍명보호, 홍명보의 아이들이라고 부를만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색깔을 입힌 팀을 내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홍명보 감독은 이 멤버들과 행복한 결말을 내고 싶어한다. 박수 받으면서 끝낼 수 있는 팀을 말이다.


“내 인생에서 2012년의 달력은 8월까지 밖에 없다. 그 뒤의 인생은 전혀 생각하지도 준비하지도 않았다. 3년 전부터 그렇게 보고 달려왔다. 가급적이면 그 달력의 마지막 날이 8월 11일이었으면 좋겠다. 그날은 축구 종목의 결승전이 벌어지는 날이다. 쉽지 않겠지만 이왕 도전한다면 마지막까지 가고 싶다. 많은 분들이 우리를 응원해주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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