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4일 금요일

기상천외한 형님구단들의 NC 견제








창원구장 복도에 새겨진 NC 캐치프레이즈 가운데 '존중하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프로야구 열기가 뜨겁다. 하지만, 이 열기도 걸그룹 '티아라' 사건보다 뜨겁진 않았다. 티아라 멤버들이 트위터에 같은 멤버 화영에게 ‘의지가 부족하다’는 글을 올리며 촉발된 이른바 ‘화영 왕따 사건’은 사회적 이슈로까지 확대됐다. 걸그룹의 왕따 논란을 지켜보며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는 이가 있다. 바로 9구단 NC 다이노스다. “연예인만 왕따가 아닙니다. 우리도 기존 구단 등쌀에 밀려 하루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NC 관계자는 갑작스럽게 걸그룹 티아라의 왕따 사건을 거론하다가 인상을 구겼다. 그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기존 멤버들이 활동하는 가운데 화영이 신입 멤버로 티아라에 들어온 것처럼 우리도 KBO(한국야구위원회)리그에 뒤늦게 합류한 막내구단이다. 당연히 기반도 빈약하고, 경험도 전무하다. 이럴 때 선배들이 할 역할이 뭔가. 막내가 차분히 리그에 정착하도록 도와주는 게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기존 구단들의 갖은 견제로 어려움만 가중되고 있다.”

그만의 생각이 아니다. 많은 야구인은 “기존 8개 구단이 신생구단의 연착륙을 도와주진 못할망정 방해공작을 펴고 있다”며 “이러려면 뭐하러 9구단을 창단했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존 구단의 압박 “2014년 1군 진입과 신인지명 축소 중 양자택일하라”






8월 18일 롯데와 NC의 퓨처스리그 경기를 보려고 창원구장을 찾은 야구팬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NC 견제의 첫 번째 정황은 신인지명이다. 지난해 KBO 이사회는 NC의 선수수급 방안으로 2012, 2013년 신인지명회의에서 우선 지명 2명과 2라운드 이후 특별지명 5명, 라운드별 총 10명을 지명하는 ‘신생구단 지원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몇몇 구단 사장은 “좋은 신인선수를 NC가 죄다 뽑으면 우린 어떻게 하느냐”며 볼멘소리를 냈다. 그러나 이들은 “NC가 기존 구단 인수가 아닌 순수 창단인 만큼 미래자원인 신인선수를 많이 뽑게 해줘야 한다”는 야구계의 설득에 밀려 마지못해 신생구단 지원안에 동의했다.


NC는 “향후 2년간 신인선수만 최대 34명을 뽑을 수 있게 됐다”며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 실제로 지난해 NC는 우선지명 2명과 2라운드 이후 특별지명 5명, 라운드별 총 10명을 지명해 총 17명의 신인선수를 받아들였다.


올해도 NC는 17명의 신인선수를 영입해 2013년 1군리그 참여를 이상 없이 진행할 참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 갑자기 몇몇 구단이 “NC의 신인선수 수급 조정이 필요하다”고 딴죽을 걸며 NC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몇몇 구단이 딴죽을 건 배경은 “이제 NC가 양보할 때”라는 것이었다. 당시 모 구단 단장의 말을 들어보자.


“원래 NC의 1군 참여는 2014년부터였다. 하지만, 기존 구단들이 대승적 차원에서 ‘NC의 2013년 1군 참여를 인정하겠다’고 양보하며 1년 일찍 1군 무대에 서게 됐다. 이렇듯 기존 구단들이 ‘통 큰’ 양보를 했으니, NC도 양보를 해야 하지 않나 싶다. 몇몇 구단에서 ‘1년도 아니고 2년 연속 NC가 좋은 선수를 싹쓸이하면 차후 리그 전력균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제 NC도 얻지만 말고, 리그의 균형발전을 위해 베풀 때가 됐다.”


이 단장의 장황한 설명을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NC의 신인선수 지명을 더는 배 아파서 못 봐주겠다’는 것이었다. 정상적이라면 ‘배 아프다’고 불만만 토했을 일이었다. 그러나 몇몇 구단은 자신들이 직접 서명했던 ‘신생구단 지원안’을 백지화하는 실력행사에 나섰다. 공교롭게도 이때 NC의 신인지명 축소를 주도한 구단이 바로 모그룹까지 나서 10구단 반대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A 구단이었다.


한 야구인은 당시 전말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약속한 NC 신인선수 지원안을 백지화하겠느냐’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넥센을 제외한 7개 구단의 모그룹이 죄다 대기업인데, 설마 이사회 약속을 파기하는 아마추어적인 무리수를 두겠느냐’는 낙관적 전망도 많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몇몇 구단은 ‘NC가 우리의 신인선수 지원 수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2013년 1군 합류를 허용하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NC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처지였다. ‘왜 약속을 어기느냐’고 강력하게 항의했다간 2013년 1군 합류가 무산될 테고, 가만히 있자니 전력 손실이 불을 보듯 뻔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약자가 참아야지.”


결국 NC는 기존 구단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6월 5일 구단 단장들이 모인 KBO 실행위원회는 이사회 약속을 한순간에 백지화하며 NC의 2013년 특별지명 인원수를 2라운드 종료 후 5명에서 3명으로 줄이는 데 전격 합의했다.

8월 20일 ‘2013 신인지명회의’에서 NC는 2라운드 종료 후 3명의 선수만을 특별지명했다.


기존 구단의 꼼수, ‘군 보류 선수에 군 제대 선수까지 포함시켜라’






롯데와 NC의 퓨처스경기 전, 창원지역 아이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신인선수 지명이 구단 미래와 관련된 문제라면 ‘보호선수 20명 외 1명 지명’은 당장의 성적과 관련된 일이다. 지난해 KBO 이사회는 신생구단 지원을 위해 신인선수 지명 혜택과 함께 세 가지 지원안을 발표했다. 첫째, ‘기존 8개 구단 보호선수 20명 외 1명씩을 NC가 지명하도록 할 것’. 둘째 ‘NC에 한해 FA계약을 3명까지 허용할 것’. 셋째 ‘NC에 한해 외국인 선수 4명 보유 3명 출전을 인정할 것’이었다.


이 가운데 야구계가 가장 주목한 지원안이 ‘보호선수 20명 외 1명 지원’이었다. 실질적인 팀 전력강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지원안이었기 때문이다. KBO 양해영 사무총장이 설명하는 '보호선수 20명 외 1명 지원방식'은 다음과 같다.


“제아무리 신생구단이지만, 신인선수와 각 구단에서 퇴출한 선수만으로 팀을 구성할 순 없다. 그렇게 팀을 구성했다간 1군 무대에서 승률 3할도 유지하기 어렵다. 1군 무대에 연착륙하려면 1군급 선수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생겨난 지원안이 ‘보호선수 20명 외 1명 지원’이었다. 방식은 간단하다. 먼저 기존 8개 구단은 20명의 선수를 보호선수로 묶어둔다. NC는 각 구단이 보호선수로 지명한 20명은 영입하지 못하고, 20명 외 나머지 1명씩을 자유롭게 지명한다. 대신 1명마다 10억 원의 보상금을 원소속 구단에 지급한다.”


NC는 보호선수 20명 외 1명 지원을 통해 팀 전력을 극대화하고자 했다. 야구계 일부에서 “야구계 공생을 위해 기존 구단들이 선수들을 무상 지원해야지 무슨 10억 원을 받느냐”고 비판했지만, 정작 NC는 “각 구단이 선수들을 육성하는데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 만큼 당연한 비용으로 생각한다”며 전향적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NC는 기존 구단들에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왜냐? 기존 구단 단장들이 KBO 실행위원회를 통해 ‘보호선수 예외’를 자기들 멋대로 확장해놓은 까닭이다.


KBO 규약엔 ‘군 보류 선수, 당해연도 FA 신청선수, 외국인 선수는 보호선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쉽게 말해 군 보류 선수, 당해연도 FA 신청선수, 외국인 선수는 보호선수 20명 안에 굳이 포함시키지 않아도 현 소속구단의 보호를 받는 예외 선수들인 것이다. 이들이 보호선수에 포함되지 않으면서도 구단 보호를 받는 이유는 간명하다.

군 보류(입대) 선수는 현재 군 복무 중인 선수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선수에게 갑작스러운 신분변화가 있어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당해연도 FA 신청선수는 당연히 그해 시즌이 끝나면 어느 팀으로 둥지를 옮길지 모르니, 보호선수 안에 넣을 필요가 없었다. 외국인 선수 역시 계약기간이 끝나면 언제든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에 보호선수로 묶을 이유가 역시 없었다.


하지만, 기존 구단들이 군 보류 선수 범위를 임의대로 ‘군 제대 선수’까지 확장하며 말썽이 빚어졌다. 이전까지 군 보류 선수는 군 입대 선수만을 뜻했다. 그도 그럴 게 군 입대 선수는 프로야구에서 뛰질 않고 군 복무 중이니 당연히 갑작스런 신분변화가 있어선 안 됐다. 하지만, 군 제대 선수는 제대와 함께 원소속팀으로 돌아가며 신분이 프로야구 선수로 변화한다. ‘군 복무 중에 갑작스런 신분변화가 있어선 안 된다’라는 군 보류 선수의 기본 의미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군 제대 선수 가운데 일부는 1군 잔여 시즌에 뛰기도 한다. 과거 KBO가 군 보류 선수를 '군 입대 선수'로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NC는 “군 복무를 마치고 원소속구단으로 돌아가면 그 선수의 신분 역시 소속구단의 일원이 되는데 어째서 제대 선수가 군 보류 선수에 속하느냐”고 따졌지만, ‘기득권 사수’를 위해 똘똘 뭉친 기존 구단들은 NC의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 구단 단장은 “NC는 기존 구단들이 ‘꼼수를 부린다’고 비난할 테지만, 선수층이 얇은 한국 프로야구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항변했다.


“단장이 돼보라. 보호선수 20명을 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체감할 거다. 선발투수 5명, 마무리 1명, 불펜 셋업맨 4명만 해도 10명이다. 여기다 1번부터 9번 타자에 주전급 백업 야수 1명을 더하면 금방 20명이 된다. 선수층이 두터우면 모르지만, 한국 프로야구처럼 선수층이 얇은 무대에선 어떻게든 주전 선수 출혈을 막아야 한다. 그래서 내놓은 묘안이 군 제대 선수를 군 보류 선수 안에 포함하자는 것이었다. 군 보류 선수는 보호선수 20명 안에 넣지 않아도, 보호를 받는 신분이라, 우수 선수 유출을 한 명이라도 더 막을 수 있는 묘안 중의 묘안이었다. NC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우리 코가 석자다.”


NC는 마지막까지 “이 선수 빼고, 저 선수 빼면 도대체 우리더러 누구를 지명하란 소리냐”며 하소연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기존 구단들의 다수결 담합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자칫 반발했다가 기존 구단들이 ‘보호선수 20명 외 1명 지원’ 약속마저 파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과도한 걱정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기존 구단들은 신인지명에서 ‘약속’을 파기한 전력이 있었다.






2003 신인지명회의에서 우선지명자와 1라운드 지명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 야구인은 “신생구단 지원 축소가 기존 구단에겐 당장의 이익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 관점에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NC가 승률 2할대에 그친다고 생각해보라. 누가 지기만 하는 NC의 경기를 보겠는가. 리그 전체를 바라보는 팬들의 관심도도 크게 떨어질 게 자명하고, 리그 경기력도 눈에 띄게 저하될 것이다. 특히나 프로야구는 ‘네가 죽고 내가 산다’는 약육강식의 무대가 아니다. ‘네가 살아야 나도 살 수 있다’는 공생의 무대다. 그래서 신생구단 지원안은 넓게 보면 기존 구단을 위해 더 필요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기존 구단들은 당장의 밥그릇에만 치중해 신생구단 지원안을 축소시키는 우를 범했다. 지금이라도 신생구단이 우리의 적이 아닌 동반자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그걸 기존 구단들이 깨닫지 못한다면, 걸그룹의 경우처럼 팬들이 갑자기 프로야구에 등을 돌리는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NC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대범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부에서 “NC가 너무 소극적이고, 수동적이기에 기존 구단들의 횡포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는 볼멘소릴 내놓지만, NC는 “그럴수록 우리 먼저 리그와 리그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며 “엄혹한 현실일수록 지름길을 선택하기보다 정도(正道)를 걷겠다”는 입장이다. NC는 기존 구단들이 지원안으로 내놓은 '외국인 선수 4명 보유, 3명 출전안'도 스스로 '3명 보유 2명 출전'으로 축소한 바 있다. '프로야구의 항구적 발전과 내국인 선수들의 일자리 확보를 위해서라도 외국인 선수 4명은 너무 많다'라는 게 NC의 생각이었다. 따지고 보면 기존 구단들이 NC에 '외국인 선수 4명 보유, 3명 출전'을 제시한 것도 자신들의 숙원인 '3명 보유, 2명 출전'을 관철하려는 기만책에 불과했다.


한 살짜리 막내가 31살이나 먹은 형들보다 리그를 더 존중하고,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 슬프지만, 이것이 한국 프로야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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