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박성우 기자]
▲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조별예선 한국과 가봉의 경기가 열린 웸블리스타디움 |
ⓒ 이지연 |
한국 축구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후 8년 만에 올림픽 8강에 진출했다. 8월 1일 오후(이하 현지 시각), 1948년 런던올림픽 당시 주경기장이자, 역사적인 영국 축구의 성지 웸블리스타디움에서 열린 올림픽 축구 B조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홍명보 호는 가봉과 득점 없이 비겨, 1승 2무 승점 5점으로 조 2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오는 4일 토요일 오후 7시 30분 카디프 밀레니엄스타디움에서, A조 예선을 1위로 통과한 홈팀 영국 단일팀과 준결승 행을 다투게 되었다. 한국 축구가 웸블리에 입성하여 올림픽 8강 티켓을 획득한 현장을 다녀왔다.
[#1. 오후 2시] '프로페셔날 카메라'는 안 된다니...
▲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조별예선 한국 대 가봉 전 입장권. 그리고 함께 지급된 런던 대중교통 자유 이용 카드. |
ⓒ 박성우 |
경기 시작 세 시간 전. 이미 몇 달 전에 구매해 놓은 한국과 가봉의 축구 경기 티켓을 살펴보니, 올림픽이라 그런지 유난히 각종 주의 사항들이 많다. 보안이 철저하다는 경고, 그래서 웬만하면 가방조차 가지고 오지 말고, 경기 2시간 전까지 입장하라는 것, 현장에선 현금과 공식 스폰서인 비자카드만 사용 가능하다는 점, 렌즈를 갈아 끼우는 것으로 정의된 '프로페셔날 카메라'는 반입이 안 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DSLR이 이미 대중화 된 현실에서 IOC의 이러한 카메라 반입 금지 조치는 디지털 올림픽이라는 구호와 소셜 미디어(1인 미디어)의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이며, 현장에서 공식 스폰서인 비자 카드만 사용하도록 한 점 역시 올림픽에서만 보이는 유별난 모습이다. 하지만 모든 올림픽 티켓 구매자에게 경기 당일 런던 대중교통 자유 이용 카드를 같이 지급한 것은 교통비 부담을 줄여주고 대중교통 이용을 유도한 점에서 긍정적이었다.
[#2. 오후 3시] 9만 석 경기장, 관중석 빌까 걱정했는데
▲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조별예선 한국과 가봉의 경기가 열린 웸블리스타디움 주변을 가득 메운 관중들 |
ⓒ 이지연 |
웸블리 스타디움 인근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이미 축구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출발 전, 9만 석에 달하는 거대한 스타디움이 얼마나 채워질까 조심스레 이야기하던 우리의 예상은 '영국이 아무리 축구의 나라이고, 지금이 올림픽이지만, 예선 경기에다, 축구 변방인 한국과 가봉의 경기인 만큼 한국 응원단 위주로, 많아야 2~3만 명 정도 관중이 올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장 도착 즉시 우리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경기의 공식 입장 관중 수는 무려 7만6927명이었고, 이 가운데 영국 현지 관중이 약 70%, 한국 응원단 25%, 가봉 응원단 5% 정도였다. 우리는 궁금했다. 왜? 이 사람들 다 뭐지?
[#3. 오후 5시] "한국 감독은 수비수 출신인가요? 수비만 다듬었네요"
▲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조별예선 한국과 가봉의 경기가 열린 웸블리스타디움 |
ⓒ 이지연 |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45파운드(약 6만5000원)짜리 2등석에 자리를 잡은 기자 주변은 온통 영국인들이었다. 경기 내내 이들을 유심히 살펴보았고 이들과 대화를 나누어보았다. 노부부, 건장한 자녀를 데리고 온 중년의 부부, 젊은 커플 등 가족 단위가 많았으며, 이들의 대화에서 자신들의 축구에 대한 애정, 웸블리에 대한 사랑, 해박한 축구 지식 등이 여지없이 나타났다. 무엇보다 축구를 일상적으로 즐기는 편안함이 묻어났다.
"한국 감독은 수비수 출신인가요? 수비만 다듬은 것 같네요. 공격과 밸런스가 안 맞아요. 공격에서도 수비할 때처럼 한 명 한 명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해야 하는데. 겉돌고 안정감이 없어요."
그러고 보니 우리 팀의 홍명보 감독, 김태영 수석코치 모두 명수비수 출신이다. 박건하 코치는 공격수 출신이지만 '이름을 떨친 공격수'라고 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한국 팀이 경기를 지배하지만, 너무 찬스를 놓쳐요. 이 가운데는 놓쳐선 안 되는 기회들이 너무 많았어요. 앞으로의 경기에 심리적으로 영향을 줄 겁니다."
"한국 팀이 가봉보다 기술이 더 좋고, 무엇보다 생각하는 축구를 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바르셀로나를 너무 따라하려는 것 같네요. 이럴 땐 차라리 첼시 스타일이 더 나은데."
"6번(기성용)과 13번(구자철)은 경기 조절 능력과 템포가 돋보입니다. 하지만 10번(박주영)은 피지컬과 기술에서 더 강력함을 보여야 합니다. 원톱이라면."
후반 중반 지동원이 교체로 출전하자 뒤쪽에 앉은 영국인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조용히 이야기해준다.
"저 9번 선수 선덜랜드에서 뛰는 젊은 친군데, 인상적인 마무리를 하기도 하니 유심히 지켜봐."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에디 워커(65)씨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BBC 축구 해설가 이야기도 잘 안 듣습니다. 중계 볼 때 볼륨을 일부러 낮추죠. 우리보다 저희 팀에 대해 더 모르는데요, 뭘. 제가 응원하는 팀은 저희 집 대대로 응원해 온 브라이튼입니다. 지금 챔피언십(2부리그)에 있지만 상관없어요. 우리 팀이고 선수들이니까요. 오늘 온 이유요? 우리 웸블리에서 하는 시합이니까요. 그리고 한국 팀은 2002년 이후 항상 경기를 재미있게 하는 것 같아, 기대를 하게 만듭니다."
▲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에디 워커씨 부부 |
ⓒ 이지연 |
[#4. 오후 7시] 박지성 아느냐 물었더니... "에이 장난해요?"
경기는 결국 양팀 모두 득점 없이 끝나고 말았다. 여기저기에서 아쉬움과 기대의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기자는 경기장을 빠져 나오면서 영국 현지인들에게 한국 축구 선수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우선 한국 축구 선수 가운데 아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은 셀틱의 미드필더 '키(기성용)'를 안다고 대답했고, 의외로 선덜랜드의 지동원을 많이들 알고 있었다. 기성용은 우리의 예상보다 현지에서 훨씬 높은 인기와 인지도를 가진 셀틱이라는 유명 클럽 소속이라는 점, 그리고 지동원의 경우엔 지난 시즌 비록 짧았지만 강팀을 상대로 임팩트 있는 활약을 한 점이 영국 축구팬들 머릿속에 남은 것 같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부상으로 한 시즌을 허비한데다 볼튼이라는 클럽의 인지도가 낮은 까닭인지 이청용의 이름은 거의 모른다고 말했다. 런던의 클럽 소속임에도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린 박주영(아스날) 역시 거의 알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박지성에 대해 물어보았다. "박지성을 아십니까?"라고 묻자 "알아요" 혹은 "모르겠어요" 같은 식이 아닌, 다른 형태의 대답이 돌아왔다.
"에이 장난하세요? 유나이티드잖아요."
"아니 뭘 그런 걸 물어봐요?"(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이처럼 박지성은 한국 선수라는 생각보단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라는 점을 오늘 만난 영국인들은 더 크게 인식하고 있어 보였다. 그러나 박지성이 최근 QPR로 이적한 사실은 아직 많이는 모르는 것 같았다.
이제 한국 축구는 거의 전 국민이 축구팬이자 전문가인 영국 단일팀을 다가오는 주말 카디프에서 혈투를 벌여야 한다. 우리 팀이 결승의 무대에서 다시 한번 이곳 웸블리를 찾아 영국 축구팬들에게 더 큰 놀라움을 선사해주길 기대해본다.
▲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조별예선 한국과 가봉의 경기가 열린 웸블리스타디움 |
ⓒ 이지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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